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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교회 유치부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왔던 성경속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그 이야기는 성경에 쓰인대로, 교회의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신이 도운 기적의 승리로 각인되었다. 이것은 다른 생각의 여지하나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틀 안에서의 이야기, 즉 양이나 치던 여린 소년이 블레셋의 대전사 골리앗을 유대교의 신의 보호와 도움아래 단 한 번의 돌팔매로 쓰러뜨린 전설의 승부로만 우리에게 존재한다. 싸움의 순간에서만 판단되는 정세, 그리하여 유발되는 극단적 불안감을 전제로 귀에 수없이 박히도록 들어서 생각의 유연함은 거세되어버린 채 고정된 모습으로 뇌리에 새겨진 단 하나의 일화는 우리에게 다른 생각의 여지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해석은 골리앗과의 전투 이전의 행적에 대한 연구와 그의 능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며 우리에게 다른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양을 위협하는 호랑이, 곰, 늑대들을 중장거리에서 물리치느라 연습한 돌팔매는 매우 위력적이고 정교한 실력이었다는 분석은 본문에 나온다. 내가 다른 곳에서 읽은 내용으로는 다윗은 돌팔매를 훈련받은 소년돌격병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골리앗은 말단비대와 거인증을 앓아 덩치가 컸을 뿐이며 복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분석이 본문에 나온다. 이쯤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결과는 당연해진다. 단편적 정황판단과 단 하나의 이야기로 고정된 우리의 사고는 다양한 정보아래 유연성을 회복하게 된다. 사회에서 마주쳐야 하는 오만한 골리앗을 이겨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는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본문에서는 설명된다.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를 이기거나 극복하는 방식은 사뭇 본능적이거나 유연해보인다. 본문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일화나 사건들은 약자의 입장에서 자기만의 치밀한 전략을 가졌다기보다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다른 능력을 자연스럽게 단련시킨다거나, 기회 앞에서의 눈치와 용기, 그리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합리적 판단과 행동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결과들은 마냥 성공적이지만도 않고, 수많은 케이스 중의 소수만의 이야기라는 점도 간과하기 힘들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서 몸과 마음의 유연함이 그들에게 긍정적 결과를 유도하였고, 자신의 약점을 우회하여 본능적으로 발달시킨 다른 능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느껴지는 특징은 그런 현상들이 거의 모든 순간에서 의도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유연함을 통해 발견한 나의 능력과 기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판단과 효율적 활용이 긍정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고보면 약자의 약함은 다른 방식으로 강자와 동등하거나 월등하게 상대할 수 있는 강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약자의 범위는 사뭇 협소해 보인다. 가진 약점이 자연스럽게 다른 강점을 단련시키는 요소로서 작용하고, 주어진 사회적 틀 안에서 유연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다 읽고나면 뭔가 애매한 구석이 남게 되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그런 범주의 약자들인가 하는 의문도 피할 수가 없다. 저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과연 약자 전체인가, 아니면 강자를 이길 수 있거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만 자기파악도 못한채 방황하는 특정범주의 약자들인가.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동시에 우리는 주어진 틀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인가? 즉, 합법이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자에 대항할 수 있는 상태인가? 라는 의문도 들지 않을 수 없다. 땅을 뚫고 나온 새싹위에 놓은 돌이 바위라면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새싹이 살아내고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피해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성장한 나무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작은 돌이라면 치워내는게 나무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작은 돌을 일부러 두려 한다면, 그것은 싸워서 치우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약자라는 전제하에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의 현상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떤 처지에 내몰려 있는 것인가... 읽고나서 쏟아지는 생각은 무궁무진해졌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겐 사고의 유연함이 부족하고 스스로에 내재된 능력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적 강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획일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어진 틀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싸움에 앞서 나를 파악하는 돌아봄과 지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애매함과 수많은 질문 속에서 오롯하게 떠오르는, 우리에게 가장 그리고 먼저 필요한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