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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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을 존중한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많이 안다는 것과는 결이 다른 능력이다.  시간을 두고 쌓인 경험을 타인에게 베푸는 일은 감사한 일이다.  그것은 개인이 개인의 성장을 위해 풀어내는 소중한 보따리이며, 사회적으로는 발전과 성숙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경험의 깊이와 타당성 또는 논리 앞에서 그것을 쉽게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 위에 꾸준하게 쌓이는 무엇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것을 더 많은 시간 위에 꾸준하게 쌓은 사람밖에 없다.  사회의 위계와 질서는 어쩌면 이러한 원리로 형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경험이란, 보편적인 관점에서 나이와 비례한다.  나이가 쌓인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쌓인다는 의미이다.  나이든 이의 경험은 뒤따라오는 이의 배움의 양식이다.  경험은 첨예하게 쌓은 하나의 탑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삶의 제반요소들이 다양하게 뒤섞인 풍부한 덩어리일 수도 있다.  그 두가지를 잘 어우러지게 섞어 삶을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내어주는 이는 존경의 칭송을 받는다.  나는 방금 그러한 이가 담담히 써 내려간 책 한 권을 읽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잔잔해진다.  내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채우고 쌓아야 할 지 하나의 모델이 됨을 깨닫는다.

  경험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존중과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비판과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꼰대’라 불리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반면교사의 고사성어 단 하나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노동의 경험이 중요했다.  현재엔 사고의 방식과 생각의 경험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사고와 행동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존중받고 공감받을 수 있는 개인의 경험은 극히 적어졌다.  대신, 우리는 반면교사의 꼰대들을 너무 많이 만난다.  그리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것을 물려받는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꼰대가 되기 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이든다는 것이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세상의 보편적 합리와 공정을 위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하나의 귀감이 될 만한 선 세대의 사고경험을 열심히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사소한 부탁은 사소하지 않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어떻게 사상과 생각을 견지하며 활용했는지, 이 책은 그것을 보여주며 당부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라고 부탁한다.  그것은 사소하되 결코 가볍지 않다.  생각과 고민은 당연히 이어나가야 할 인간의 의무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다.  가볍지 않음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복잡함을 조금 덜어낼 만한 한 사람의 존중받고 공감받을 경험 하나를 만났다.  하나의 귀감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공감되며 존중받을 하나의 경험은 여기서 멈추었다.  활자화된 묵직한 생각을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귀감이 사라지는 일은 꼰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너무 아쉽고 슬픈 일이다.  어떤 삶에게든 스승이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영면을 기도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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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성
고형권 지음 / 구름바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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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항상 커다란 인물과 커다란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커다란 역사의 한 순간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 계급성을 지닌 인물들의 활동 뿐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간에, 마치 역사는 그들에 의해서만 굴러가는 것 같이 보였다.  그것은 그대로 역사 교과서가 되었고, 우리는 편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좁은 시야로 그것을 외워야만 했다.  과거를 서술하는 역사를 현재에 대입해보면, 그런 역사는 자기부정일 수 밖에 없다.  거대하게 구르는 역사의 위에 도드라지는 몇몇이 있다면, 역사를 굴리는 수많은 대다수는 현재의 우리와 같은 이름없는 인민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굴러가는 역사 안에서, 우리 인민들은 어쩔 수 없이 순박하고 성실하게 굴리고 지탱했다.  계급이라는 나면서부터의 굴레를 안고 삶을 꾸려나가는 일은, 그것 그대로 닥쳐오는 것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세세한 시선을 가지고 그 삶의 흔적들을 들추어내는 일은, 막연하게 외어야만 했던 역사를 배우는 일보다 훨씬 재밌고 친근하다.  그것은 자기부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고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세우고, 아래로부터의 세세한 시선으로 이름없던 인물들을 되살려내 허구의 살을 붙여 이야기 하나가 탄생했다.  정유재란 당시 교룡산성과 남원성에서 있었던 일본 침략군과 조선군과 명군의 대치, 그리고 함락의 과정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펼쳐진다.  남원성을 지켜야만 한다는 순박하면서도 막연한 사명이 이름없는 대다수의 상놈들 마음에 자리잡았다.  싸움을 이끌어야 하는 권력자들은 각자의 이익과 기회를 가늠하며 싸움의 결말을 이끌어내려 한다.  싸움의 대의만을 간직한 자는 결국 죽임을 피할 수 없었고, 이익과 기회를 가늠한 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남는다.  그것들을 아우른 넓은 시선은 침략과 저항 속에서 국가권력과 계급권력의 기울기를 긴장 안에서 주시한다.  역사는 그렇게 기회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해석되었고, 죽은자는 말이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것을 되살리는 일은 그래서 버겁고, 조심스럽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왜곡없이 되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김 훈의 남한산성이 지배계급의 견지를 가지고 병자호란의 고립을 관망했다면, 이 책 남원성은 정유재란 당시의 처절함을 피지배계급의 시선으로 철저하게 아래로 파고들며 치열하게 서술한다.  남한산성이 권력의 위태로움을 걱정했다면, 남원성은 목숨을 바쳐가며 터전을 지키려던 인민들의 덧없고 무모한 무엇을 드러내었다.  그러면서도 과거 전쟁의 대치와 충돌이라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일본군과 남원성내 진영간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관계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삶을 잃고 목숨을 위협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복잡한 심경과 전쟁전략의 입체적인 구성과 관계가 잘 어울린다.  남한산성의 문체는 차분하지만 한 발 떨어진 시선으로 관조의 안전한 위치를 강요한다.  그러나, 남원성은 시선을 적극적으로 전장 안에 두어 처절함과 치열함 안으로 마음을 끌어들여 들끓게 한다.  이것은 독자를 적극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가의 저력이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민들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의 솔직한 결이다.

  개인적으로는 한물의 칼을 다루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검도를 해서 그런지, 그의 얼굴이나 몸이 상상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가 칼을 다루는 모습, 일대 일로 검 대결을 하는 묘사는 칼의 움직임이 상상되면서 검의 움직임과 그의 승리가 납득되었다.  작가는 검을 다루어 본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독서를 멈추고 잠시 해 보았다.  어쨌든, 고증과 구성과 긴장과 묘사 모두 적당하고 탄탄한 재밌는 소설을 만났다.  뜨겁게 타오르지 않지만 단단하고 나직하며 뜨끈한 불덩어리 하나 가슴에 안은 느낌으로 독서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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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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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낚시를 가르쳐 준 동생은 종종 나누는 낚시 이야기에 잡기만 하고 보호하려 하지 않는 낚시 문화에 대해 한탄을 섞는다.  일본만 해도 무늬오징어 산란을 위해 바다에 나무토막들을 넣어주고, 선장들은 포획제한 체장을 철저히 지켜 어족자원 보호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다에 나무토막을 넣는 행위는 불법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나도 그의 한탄에 적극 공감한다.  내가 다니는 낚시포인트의 대부분에서는 낮에 잡힌 어린 치어들이 어둑해져가는 밤 바닷바람에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대부분 목적하는 어종이 아닌 잡어라서 다시 보내면 입질하러 온다는 이유로 낚시꾼들이 방파제 위에 버린 것들이다.  확실히, 우리의 낚시문화는 비판받을 모습들이 많다.  낚여 올려지는 물고기들엔, 그저 잡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심어린 눈빛들이 날아 박힌다.  자중, 보호, 방생, 정리 등등의 가장 기본적인 매너나 배려따윈 그다지 발현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매너나 배려는 포획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기대를 걸고 ‘부탁’해야 하는 본능을 넘어선 고도의 행위인지도 모른다.  위에서 말한 매너나 배려는 엄밀히 말하자면, 레저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낚시행위 안에서 인간 이성의 요구이자 자정작용이다.  그러니까, 생존과 본능을 넘어선 고차원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행위이기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의 생존본능 차원에서의 낚시 또는 어획은 여전히 배려없는 남획 수준이라는 것이 이 책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주장이다.

  인간이 물고기를 잡는 방식과 배려없는 남획은 인간 역사를 관통하며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것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다.  인간은 물빠진 웅덩이에서 버둥거리는 메기를 잡아냈고, 배를 타고 나가 동물의 뼈로 만든 낚시바늘로 물고기를 낚았다.  명주실이나 질긴 나무줄기를 엮어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고, 덫을 놓아 물고기를 잡았다.  잡히는 물고기가 부족하거나 한 자리에 정주해야 하는 경우엔 물고기를 잡아 가두어 길렀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 가두어 길러 먹는 방법, 모두 인간의 과거와 현재에서 달라짐이 없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동력과 소재가 발전하며 잡는 방법의 효율이 좋아졌고, 잡는 양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최근까지도, 바다는 끝없이 물고기를 제공하는 거대한 화수분으로 인식되었다.  점점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열망은 현실이 되었고, 풍요 속의 반작용으로 어족의 고갈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은, 바다는 무한하며 끊임없이 물고기를 생산해 낼 것이라는 무지한 결론으로 남획을 이어나갔다.  동력이 발전하고 좀 더 먼 바다로 나가 잡아올리는 물고기는 생존의 수단에서 경제적 목적으로 변했다.  남는 것은 동물 사료나 비료가 되어버렸다.  하얀 악마 모비딕을 잡으려는 에이해브 선장의 열망은, 인간의 위대한 도전이 아니라 바다를 남용하는 인간의 우매함으로 변질되었다. 

  어장은 곳곳에서 황폐해졌고, 황폐해진 어장에서의 어족은 멸종 수준으로 줄었다.  바다는 여전히 인간의 탐구대상인 만큼 인간의 눈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건져올리는 물고기들은 생존의 목적을 넘어 자본의 수단으로 잠식되어 버렸다.  줄어드는 어획량을 보존하고자 양식이라는 수단을 발전시키지만, 어장을 복원하고 식량으로 공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히 남용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바다와 바다자원의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연한 현실을 외면하며 남용을 이어가는 인간의 우매함이 바다에서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전 세계 곳곳에 펼쳐진 어로행위의 흔적을 바탕으로 인간의 역사에서 물고기를 어떻게 잡았고 활용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객관적이고 수평적인 서술 안에서 세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물고기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유지시켰는지 설명한다.  서술 안의 중심에는 언제나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주장이 흐른다.  인간이 물고기를 잡고 기르는 방법은 역사 안에서 변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언제나 남획의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아올렸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낚시를 즐기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현재의 시간 안에서 낚시하며 느끼는 것들과 강렬하게 연결되었다.  이제는 레저의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분야가 된 낚시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예전엔 흔해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던 생선이 빠른 시간안에 귀해지며 가격이 오른다.  예전엔 방파제에서도 넉넉하게 잡혔던 어종들이 이제는 배를 타고 나가야만 손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급격한 변화와 물고기를 남획해 온 인간역사 안에서의 변화는 왠지 많이 닮아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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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부정 서적에 살해당하지 않기 위한 48가지 진실
나가노 가즈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고병수 추천 / 북앤월드(EYE)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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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라는 건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확률로 설명되는 발병율과 치료율은 개개인에게는 제로 아니면 100퍼센트의 문제이기에, 집단과 개인사이에서의 괴리는 불확실성과 결합하여 불안을 낳게 된다.  불안은 현대의료의 중심에 존재하는 서양의학에서 비롯된 바, 불안이 팽배해진 사람들은 서양의학이 아닌 의료나 대체의학, 민간요법등등을 찾아 나서게 된다.  

  과학의 논리엔 오류가 존재하고, 경험으로부터의 체득엔 오판이 존재한다.  전자가 서양의학이 중심이 된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이라면, 후자는 민간요법이나 오랜시간 쌓여온 대체의학의 잘못된 치료법일 것이다.  의료라 불리우는 모든 방법들이 저마다 완전하지 않고, 치료법의 선택권은 환자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면, 의료를 행하는 자나 치료를 받는 자나 담담하고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판역시 스스로에겐 엄격하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합리적이어야 하나, 최근에 보였던 의료분야의 비판은 이성을 잃어버린 비난과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현대의학을 비판하는 수많은 책들도 그러했고 최근에 SNS에서 활동하던 허 모씨의 책과 멘션들은 그저 헛웃음만 나오는 수준의 내용들이었다.  문제는 그런 비난과 부정이 환자의 절박함과 결합하여 맹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환자의 절박함을 활용한 장사로 귀결되고 만다.


  맹신이 된 비난과 부정 앞에서 반박을 펼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흥분하기 시작하면 논리나 결과면에 있어 우월한 위치에 있더라도 진흙탕 싸움이 되기 쉽다.  방법의 최우선은 일단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논리와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반론을 내놓아야 한다.  현대의학 역시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정말 훌륭하다.  반박보다는 의학적 지식에서 비롯한 논리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의학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주장도 없이 현실의 모습을 쉽게 설명해나감으로서, 비난과 부정 앞에서의 현대의학이 왜 우리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하고 어떻게 우리의 몸에 유익하게 다가오는지, 그럼으로서 저들의 비난과 부정엔 어떤 논리가 부족한지 자연스럽게 이해시켜준다.  이는 자칭 분야의 최고라는 전문가의 날카로운 견해가 아닌, 나이 지긋한 동네 주치의이자 재택의라는 위치이기에 가능한 글이기도 하다.  설명 하나하나가 군더더기없이 부드럽기에 이해와 수용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다.


  의사로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동네 주치의이자 재택의로서 사람들의 죽음에도 관여한다는 점이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에게 조언을 건네어주고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삶에 합치되는 부분이 많아 나도 저자와 같은 의사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의사이고 나는 의료뿐만 아니라 인간의 죽음마저도 산업으로 활용되는 극단의 사회에 머물고 있는 의사이다.  아쉽지만 나의 입장에서 그의 모습은, 현직의사로서 현대의학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절할 하나의 기준으로, 그리고 의학을 좀 더 인간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표본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여튼 이 책은 의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아주 쉽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현대의학에 대한 의구심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면, 이 책은 이제까지의 해설서 중 가장 훌륭한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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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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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교회 유치부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왔던 성경속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그 이야기는 성경에 쓰인대로, 교회의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신이 도운 기적의 승리로 각인되었다.  이것은 다른 생각의 여지하나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틀 안에서의 이야기, 즉 양이나 치던 여린 소년이 블레셋의 대전사 골리앗을 유대교의 신의 보호와 도움아래 단 한 번의 돌팔매로 쓰러뜨린 전설의 승부로만 우리에게 존재한다.  싸움의 순간에서만 판단되는 정세, 그리하여 유발되는 극단적 불안감을 전제로 귀에 수없이 박히도록 들어서 생각의 유연함은 거세되어버린 채 고정된 모습으로 뇌리에 새겨진 단 하나의 일화는 우리에게 다른 생각의 여지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해석은 골리앗과의 전투 이전의 행적에 대한 연구와 그의 능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며 우리에게 다른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양을 위협하는 호랑이, 곰, 늑대들을 중장거리에서 물리치느라 연습한 돌팔매는 매우 위력적이고 정교한 실력이었다는 분석은 본문에 나온다.  내가 다른 곳에서 읽은 내용으로는 다윗은 돌팔매를 훈련받은 소년돌격병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골리앗은 말단비대와 거인증을 앓아 덩치가 컸을 뿐이며 복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분석이 본문에 나온다.  이쯤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결과는 당연해진다.  단편적 정황판단과 단 하나의 이야기로 고정된 우리의 사고는 다양한 정보아래 유연성을 회복하게 된다.  사회에서 마주쳐야 하는 오만한 골리앗을 이겨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는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본문에서는 설명된다.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를 이기거나 극복하는 방식은 사뭇 본능적이거나 유연해보인다.  본문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일화나 사건들은 약자의 입장에서 자기만의 치밀한 전략을 가졌다기보다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다른 능력을 자연스럽게 단련시킨다거나, 기회 앞에서의 눈치와 용기, 그리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합리적 판단과 행동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결과들은 마냥 성공적이지만도 않고, 수많은 케이스 중의 소수만의 이야기라는 점도 간과하기 힘들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서 몸과 마음의 유연함이 그들에게 긍정적 결과를 유도하였고, 자신의 약점을 우회하여 본능적으로 발달시킨 다른 능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느껴지는 특징은 그런 현상들이 거의 모든 순간에서 의도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유연함을 통해 발견한 나의 능력과 기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판단과 효율적 활용이 긍정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고보면 약자의 약함은 다른 방식으로 강자와 동등하거나 월등하게 상대할 수 있는 강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약자의 범위는 사뭇 협소해 보인다.  가진 약점이 자연스럽게 다른 강점을 단련시키는 요소로서 작용하고, 주어진 사회적 틀 안에서 유연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다 읽고나면 뭔가 애매한 구석이 남게 되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그런 범주의 약자들인가 하는 의문도 피할 수가 없다.  저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과연 약자 전체인가, 아니면 강자를 이길 수 있거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만 자기파악도 못한채 방황하는 특정범주의 약자들인가.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동시에 우리는 주어진 틀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인가?  즉, 합법이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강자에 대항할 수 있는 상태인가? 라는 의문도 들지 않을 수 없다.  땅을 뚫고 나온 새싹위에 놓은 돌이 바위라면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새싹이 살아내고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피해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성장한 나무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작은 돌이라면 치워내는게 나무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작은 돌을 일부러 두려 한다면, 그것은 싸워서 치우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약자라는 전제하에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의 현상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떤 처지에 내몰려 있는 것인가... 읽고나서 쏟아지는 생각은 무궁무진해졌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겐 사고의 유연함이 부족하고 스스로에 내재된 능력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적 강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획일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어진 틀 안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싸움에 앞서 나를 파악하는 돌아봄과 지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애매함과 수많은 질문 속에서 오롯하게 떠오르는, 우리에게 가장 그리고 먼저 필요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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