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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교토엔 두 번 방문했다. 뒤늦게 맘이 동해서 시작한 해외여행에 오사카, 고베, 교토를 둘러보았다. 단 하루 방문한 교토에서, 전체일정의 설렘과 감동의 80퍼센트 정도를 빼앗겨 버렸다. 기온시조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풍경에의 감동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두 번째 일본여행은 3일을 교토에서 머무는 일정으로 정했다. 오사카는 쇼핑목적으로 단 하루 머물렀다.
교토의 일정 대부분은 무리할 정도의 걷기였다. 동행한 아내와 아들의 불평이 쏟아져도, 나는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골목골목의 풍경과, 오래된 건물과 단아하게 늘어선 상점들, 그리고 작은 개천 줄기마다 물이 맑게 흐르고 버드나무와 벚꽃이 차분하게 자리한 모습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니시키 시장보다도 기온거리의 작은 골목이 좋았고, 숙소가 있던 산조 역에서 헤이안 신궁으로 이어지는 길, 기온거리에서 청수사로 향하며 지도로 들쑤시듯 들어갔던 골목 풍경들이 작고 단아했다. 남선사에서 철학의 길을 따라 걸어 은각사로 이어지는 길은 다리가 아파도, 가을의 길목에서 봄이 그리워졌다. 걷고 걷다가 가끔은 버스를 탔고 가끔은 지하철을 탔다. 그 도시는, 골목과 동네의 풍경 모두, 나의 시야를 끌어다가 자신들의 모습 안으로 녹여 스며들게 했다.
관심이 깊어지면 알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교토는 알수록 그 의문이 깊고 넓어졌다. 그러니, 교통이나 관광지, 맛집 정도나 검색하고 온 여행객은 이 도시를 더욱 깊게 알고 싶어졌다. 대체 이 도시가 이런 매력과 시간을 담아내고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부터가 궁금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들의 역사와 사연들은 무엇일까 하는 아쉬움이 커졌다. 그것은 아무런 준비없이 이 도시를 마주한 여행자의 미안함이 되었다. 도시는 분명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내가 다시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좀 더 많은 것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이 곳을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막연한 생각들을 안고, 나는 교토를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사실 그런 갈증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교토관련 서적을 찾아보다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의 친근함에 끌려 교토편을 구입했고, 컴퓨터 화면에 교토 지도를 펼쳐놓고 예전에 방문했던 곳들을 짚어가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읽을수록 나의 갈증은 점점 기대로 변해갔고, 준비없이 발을 들였던 나의 무모함은 민망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라시야마의 도월교를 건너며 이곳에서 신라 도래인들이 제방을 만들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가의 죽림을 걸었지만, 이 곳에서 일본 죽도의 90퍼센트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검도를 하면서도 모르고 지나쳤다. 남선사의 수로각을 보고도, 19세기 쇠퇴하는 교토경제의 부흥을 위해 비와호에서 물을 끌어다 공급하는 수로였음을 공부하지 않았다. 교토 국립박물관을 가 보기는 커녕, 그 앞의 이총에서 오래전 아픈 역사를 되새겨보지도 못했다. 야사카 신사의 고구려 도래인 흔적을 찾아가보지 않음에 민망해졌다. 그리고, 광륭사, 금각사, 수학원 이궁, 고려박물관, 기타야마 거리의 현대건축물 등등의 생각지도 못했던 교토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다음 여행지를 교토로 정하게 만들었고, 가 보아야 할 장소들로 마음에 정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사찰마다 존재하는 정원과 한국의 정원과의 차이점, 그들의 와비사비 문화, 유도리 등등을 의식하며 그곳의 사람들 사이에서 겪을 생각의 차이들을 다음 여행의 준비물로 머릿속에 정돈하고 있었다.
굳이 교토만 그러겠는가.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 곳의 사전 지식을 안고 가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다녀온 다음 그곳의 역사를 공부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그러했고, 대만이 그러했다. 이제는 머릿속에 가볍게 축적된 개념을 바탕으로 약간의 복습이면 그곳에 대해 대략의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걷는 여행지의 시간의 축이 깊고 넓게 확장되는 기분을 느낀다. 맛집이나 방문포인트보다도, 역사를 이해하면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풍부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사실, 교토의 수많은 사찰과 유적들과 예술품들을 설명하는 저자의 수준을 우리가 따라가지도 못하고 전부 습득할 필요도 없다. 다만, 어느 곳을 갔을 때, 무엇을 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의 정도로 간략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나름 풍부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교토여행의 아주 훌륭한 가이드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 내 나라의 역사와 유적에 대해 얼마나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내용에서도 이국의 문화에 감탄하면서 자국의 문화를 상대적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자라는 내용이 나온다. 돌아보니 나 역시, 그런 마음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교토가 일본 역사 안에서 중심적이고 오래된 도시인데다 보존을 위해 노력한 도시여서 그럴 것이다. 교토를 알면 알 수록,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좋든 싫든 역사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수주의나 우월주의에 대한 경계는 이 두 권을 읽는 내내 의식되었다. 동시에, 이 곳의 역사 역시 지배자 중심의 역사일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 그러니, 내가 교토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느꼈던 차분함과 단아함을 독서의 흐름 안에서 거의 회상하지 못했다. 일부러 그러하지 않음을 알겠지만, 그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