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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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조건을 생각한다.  그것은 수평적으로는 경계를 만들고 수직적으로는 계급을 만든다.  조건이란 다양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없어도 상관없는 그림자처럼, 무심하게 흘려버리거나 의식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경계와 계급이 조밀하게 만드는 세상의 풍경은 그만큼 가볍지 않다.  사소한 조건들이 다양하게 뒤섞여 만들어 낸 세상의 입체 안에서, 우리는 결고 사소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목도한다.  사람이되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입체의 다양한 굴곡과 나락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누군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조건들의 사소함은 우리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제도나 관습에서 파생되는 조건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경계나 계급은, 의식되는 순간 새롭다.  바꾸어 말하자면, 조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의 버거움이 그 만큼 크고, 그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생소한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이게 하는 조건을 굳이 현재의 경계나 계급만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다.  우리는 동등한 입장에서도 사람의 조건을 박탈당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과거 노예의 경우가 그랬고, 인간을 관리가 필요한 하나의 물자로 규정하는 군대의 경우를 본다.  제도가 이렇게 존재를 규정하는가 하면, 이주노동자들이나 난민처럼, 피부색이나 언어 등등이 인습과 충돌하며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입체 안에서도, 누군가는 경계 밖으로 추방되어 왕따가 되고, 누군가는 사회의 규칙을 어겨 틀 밖으로 추방된다.  인간의 본능과 제도와 인습의 기준으로 볼 때, 조건은 여전히 사소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소한 조건들을 의미적 또는 무의미적으로 부여하며 틀이나 경계 안에서 동등한 사람으로 존치시킬 것인지를 결정한다.  


  조건은 그래서 때론 인간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사소한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나, 우리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부당한 대우나 학대를 당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가 그렇다.  조건의 합리적이지 않음은 사형제에 대한 깊은 논의로 이어진다.  사형수를 사회의 바깥에 놓인 존재로 만들어 단순한 생명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은, 그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동물복지 수준의 배려를 통한 생명의 제거일 뿐이라 말한다.  뒤이어 말하게 될 환대의 공간 안에 마련된 장소에서, 그가 느껴야 할 고통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것이 인간적인 대우를 통한 체벌인 것이다.  사형제도의 반대와 그에 따른 논쟁은 이에 기인한다.    


  사람은 환대 안에서 자신의 장소를 만들고 권리를 가진다.  그것이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어울리며 사회를 만든다.  환대는 무조건적이어야 하며, 무조건적인 환대를 통해 서로를 존중할 때 공동체적 사회는 완성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 설명한다.  군대를 통해 인간을 물자로 규정하는 국가도 아니고, 태생적 부여를 통해 계급을 인정하는 사회도 아니다.  우리를 환대하지 않는 사람과는 어우러질 수 없기에 사회는 구성될 수 없고, 우리는 환대를 요구해야 하기에 환대의 조건을 충족한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 즉 무조건적인 환대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 장소, 환대를 사회를 구성하는 근원의 개념으로 바라본다.  정치적, 법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아렌트적 관점과, 일상에서의 상호작용 질서에 초점을 맞추는 고프먼적 관점이 있다.  이 책은 주로 고프먼적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불평등의 이유를 설명하지만, 일단 주제가 너무 방대해서 정리가 어렵다.  개념들을 바라봄에 있어 정치적 또는 법적 문제를 배제하기도 힘들다.  부담없이 흐르는 듯 하면서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념은 정확하게 머리속에 자리를 잡는다.  세상을 설명하려는 수많은 말들과 논쟁을 어떤 중심에 기대어 둘러볼 것인가에 적절한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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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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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실에서 나와 마주앉은 환자들은 각자가 저마다의 고통을 나에게 쏟아낸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때로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없다.  나이가 점점 쌓이는 요즘에는 나도 몸의 곳곳이 아파온다.  특히 오른쪽 무릎이 때로는 힘들 정도로 아픈데, 통증은 환자가 호소하고 힘들어 했던 그대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제껏 환자들이 말해 무릎통증과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깨달음에 다시 깨달음이 다가왔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이제껏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말이 줄어들고 자신감이라 생각했던 오만함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이다.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은 사실 우리가 오래도록 몰랐거나 망각하고 있던 본연의 진리였다.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말할 없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 10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증상을 직접 말하게 한다.  옆에서 대신 말해주려는 부모에게아픈데는 본인이 알겠죠.  우리가 대신 아파주지도 못하는데 말입니다.’라는 친절한 제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존재의 어떤 이해가 생기고 후부터, 사람들을 바라보기가 힘들어졌다.  대신 아파줄 없다는 사실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옆에서 무엇을 해야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함부로 위로를 건네거나 툭툭 털어버리라는 경망스런 조언은 무례라는 것을 알게 정도로 나아왔지만, 고통받는 사람 옆에서 가만히 곁이 되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없었다.  어떤 모습과 자세로, 언제까지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저자는 고통의 실체를 고통받는 이와 분리시킨다.  고통은 받는 이의 옆에 붙어있는 존재로 규정한다.  고통은 어떻게 사라지고, 사라지게 만들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고통을 당하는 이의 옆에 우리가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고통의 실체에 있어 우리는 당하는 다음의 철저한 3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고통의 전시, 고통의 경쟁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고통의 이야기이지만, 어그로를 끌어 관심을 얻으려는 SNS 세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고통받는 당사자는 대개 약자이며, 약자들은 쉽게 접근할 있는 SNS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호소한다.  호소는 저마다의 경쟁이 되고, 우리는 자의와 관계없이 고통의 레이스를 바라보는 관람자들이 된다.  단식, 삼보일배 등의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은 극단으로 달리고, 우리는 수많은 극단을 목도하며 혼란하고 불안하다.  진지한 모습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이해하고 나눌 있는가..  차라리, ‘연대는 지갑을 여는 것이다.’라는 솔직함이 반갑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우리는 고통을 나눌 수도, 직접 나서 해결할 수도 없음을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고통이다.  고통은 인간이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고통은 부당한가라는 질문에 답이 바로 내려지지 않음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관계와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고통에는 싸워야 하고, 개인과 사회에 주어지는 어쩔 없는 고통에는 겸손해야 함이 고통을 고민하는 이제까지의 종점이다.  나는 싸움과 겸손과 이를 모르는 오만이 판치는 고통의 파도 위에 표류한다.  표류하는 나에게 부딪히는 고통의 포말에 나는 여전히 어찌할 모른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며 리모컨 버튼을 눌러 후원하듯, 단순히 지갑을 열어 세상 가장 쉬운 연대로 얼굴에 묻은 포말을 닦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의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고통이라는 실존에 대해,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오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옆에 붙은 고통을 나의 말로 표현하기까지는,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고통에 대해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지는, 아주 어려운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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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백승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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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언어가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서점에 들어설 때였다.  교토의 ROHM theater 스타벅스와 공간을 쓰고 있는 츠타야 서점과 타이베이의 송산문화원구 안의 서점 안에서 느꼈던 철벽같은 암담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으며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마저 느껴졌다.  영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권 환경에서는 내가 읽었던 번역서의 원서를 보면 반가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일어와 중어는 도저히 그럴 없었다.  책을 사러 서점에 들른 것은 아니었지만, 안을 들여다 수만 있다면 내가 바라던 권은 나올텐데 하는 아쉬움..  활자를 읽어내지 못해 겪어야만 했던 문맹은 그런 것이었다.  


  다른 문화권에 있는 것과 읽는 것은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많이 달랐다.  있다는 것은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신념 하나로 버틸한 경험이었다.  먹어야 한다면 주문을 하면 되었다.  어설프나마 영어로 주문하고, 영어를 알아들으면 몸을 써서 표현하면 통했다.  내가 곳들은 전부 어느 정도의 산업발전이 이루어진 곳이라 그런지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아니면 자동차를 렌트해서 다니며 먹고 있었다.  필요한 카드나 나라의 화폐였다.  있다는 것이 가능한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라의 언어 아래 영어 주석이 없다면, 나는 완벽하게 봉사 신세였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그런 문제 역시 다방면으로 해결할 수는 있지만, 스마트폰의 도움을 배제한다는 전제 하에 나라의 언어를 읽어야만 한다면, 나는 어쩌면 여행같은 진작에 포기하고 살았을 모른다.  


  언어에 능통하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을 읽을 없다는 의미이다.  누군가 번역이나 해석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언어가 다른 사회나 문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자 소수자가 되어버린다.  정치나 사회의 이해는 커녕, 동네 사람들의 소소잡다한 정보마저도 나를 철저하게 소외시킬 것이다.  소외는 존재를 위험에 빠뜨린다.  최근에 들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망이나 사고 소식이 가볍게 다루어지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를 모른다는 의미의 문맹은 이렇게 심각하고 무겁다. 


  다행히, 책의 주인공은 정도의 문맹을 겪지는 않는다.  일정한 자격으로 중어권 문화에 들어가 일정한 지위의 일터와 주변의 도움을 받을 있었다.  문맹 체류라 하지만, 본인이 알아서 간단한 문장 정도는 익혀 여기저기 다니는 노력을 보여준다.  문맹 체류라기 보다는, 언어를 알지 못한 중어 문화권에서 살아보는 일종의 생존체험기 같다.  


  , 상해에 갔을 느낀 어떤 감정이 떠올랐다.  난징동로와 서로를 다니며 느꼈던 번화와는 달리, 고층 호텔방에서 내려다보이던 넓고 낡은 가난의 풍경들, 그리고 골목마다 배치되어 있는 경찰버스와 위로 달려있는 사방을 감시하는 카메라들..  어쩔 없이 그런 것들만 보는 삐딱한 성정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번에 그런 것들에 질렸다.  최근의 홍콩사태와 맞물려, 나는 중화권 여행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어버렸다.  그러나, 문맹 체류자는 안에서 의미를 되짚어 만한 곳들을 소개하며 위트있게 서술해 낸다.  언어학자의 지식을 나름의 위트로 버무려 시선이 이끌어내는 생각 위에 살포시 얹는다.  상해의 경험을 서울과 제주에서의 기억에 연결하여 입체적으로 생각을 서술해낸다.  말과 생각을 위해 이제껏 저축해두었던 머리 재료들을 적절하게 꺼내어 마찰없이 유연하게 굴려낸다.  이것은 문맹 체류자의 분투기가 아니라, 여행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적절한 깊이의 여행 안내서같은 느낌이다. 


  문맹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과하게 쓰인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자극적인 것에 열광하는 세상이라 제목으로 쓰였을 것이다.  환대라고 하기엔 그렇고 적어도 냉대는 없는 이국문화 안에서, 글쓴이는 생각의 매력을 발산하고 경험의 재미를 만들었다.  타인의 생각과 경험에 공감하고 재미를 즐길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왠지 문맹이라는 단어의 역치가 너무 높아진 것은 아닌가 생각이 남는 것은 어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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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은 희망 -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5년의 기록,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정신지 지음 / 가르스연구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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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배가 아파 입원한 70 중반의 할망의 발목은 어긋나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시국때 성담 지키다가 접질려 다친 발이라고 했다.  다친 때문에, 숙소에서 쉬다가 습격을 피해 지금까지 있었다고 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할망 할아방 한분 분이 저마다 곳의 역사구나.  저마다의 역사를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때부터, 병원에서 만나는 할망 할아방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 생각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굳이 4.3 뿐인가.  시국을 겪은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4.3이라는 강렬함 말고도 노인은 거의 세기를 경험해 인간의 역사다.  노인의 경험은 후세대의 지혜다.  없는 속을 먼저 헤쳐나간 이의 발자취이다.  발자취를 따르며,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원칙과 진리를 깨닫는다.  삶을 살아낸 사람은 그렇게, 뒤따르는 자들에게 무언가를 남긴다. 


  굳이 세대를 나누어 말을 붙여본다면, 솔직히 나는 지금의 노년세대에 신뢰가 별로 없다.  세상은 너무도 급격히 변했고, 변한 세상에서 노년의 지혜란 무게감이 많이 떨어진 가치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변화가 급격했던 한국의 근현대사 안에서 보편의 노년세대가 경험한 것은 여유와 생각없이 쌓은 부였다.  그렇게 세대를 살아 그들이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은 성찰없는 주장, 되돌아보지 못하는 욕심, 구조에의 몰이해이다.  어버이연합이나 보수적 집단의 머릿수를 채우고 있는 보편의 노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의 부를 거머쥐고, 보편의 권력이 되어 세상의 중심을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노년세대가 가진 경험에서 보편의 가치를 꺼낼 있다고 믿는다.  정치와 경제와 사상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간의 삶은 결국 세대가 가꾸며 살아 기반을 바탕으로 세대가 가치를 만들어 이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은,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저자도절대 양보할 없는 생각과 가치 대해서는 일부러 대화를 피하거나 적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살당보난 살아져라.’ 라는 말은 섬에서는 매우 강력한 강력한 체념이자 진리였을 것이다.  근현대사의 엄중한 시절을 모두 겪어 이들이 적지 않은 숫자의 명찰을 달고 지금 내게 쏟아지는 같은 햇볕을 쪼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어쩌면 엄청난 운이었을 모른다.  그러기에 할망 할아방들은 엄중한 시국을 빼놓지 않고 말하지만, 결국 그들의 삶에서도 어쩔 없이 영글어지는 보편의 가치가 매달린다.  누구나 뒤돌아보면 살다보니 살아지겠지만, 섬에서는 번이라도 마시고 내쉬는 일이 보편의 가치만큼 귀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섬에서는 대단한 능력이자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지금의 제주사람들도 알아들을 없다는 중산간이나 바닷가 시골할망들의 제주어를 녹취하고 알아듣는 , 아내가 지역사회 그룹에서 작업을 해보다가 이내 포기했었기에 작업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노년세대는 나에게는 애증이지만, 애증을 떠나 섬의 할망 할아방들에겐 어떤 친근함과 옅은 애정이 느껴진다.  그것이, 최근들어 관심의 대상이 섬과 제주할망들 때문이거나, 4.3이라는 삶의 강렬한 위기를 겪은 이들이라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다.  안에서 나도 무언가를 찾아보고 꺼내보려 했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일을 대신 이의 기록을 감사히 읽고 있다.  제주할망 할아방의 특별함보다는 보편의 가치를 느낄 있음은, 불안하고 불안한 인생 1회차의 말미에 제주할망과 할아방을 만나 정신차리고 다시 걸을 있게 되었다는 글쓴이의 말에서 있다.  섬의 특별함 속에서도 삶이 간직하는 보편의 가치는 어디와도 다르지 않게 다소곳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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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되는 시간 - 천막촌의 목소리로 쓴 오십 편의 단장
윤여일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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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움이 시작되면 고립을 감내해야 한다.  고립을 둘러싸고, 공감하되 현실의 뭍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반대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공감하지만 현실의 뭍에서 먹고사는데 열심인 회색지대의 회색인간이다.  제주에 제 2공항은 필요없다는 싸움에 대한 나의 지점이다.  


  제주의 제 2공항에 관한 한, 내가 이제껏 직간접으로 접한 내용만으로도 그것이 어째서 필요가 없는지, 공항을 주장하는 도정의 이유는 무엇인지는 넉넉하게 설명 가능하다.  그리고, 그 내용은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제주 신공항’이라고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굴비엮여 나오듯 하는 이야기들을 다시 적어내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이 책의 의도와도 많이 일치한다.  신공항을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어떤 자리에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구심점으로 모여 세상의 목소리로 전파되는가를 궁금해 할 때이다. 


  이 책은, 신공항을 반대하는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논리와 합리를 거쳐 나오는지에 대한 귀납적 관찰의 결과이다.  그리고, 논리와 합리와 행동을 이끌어내는 이들의 생각과 삶에 대한 고찰이다.  초점은 신공항을 반대하는 영역 안에서도 반대의 정수, 그러니까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살아가며 반대의 모든 것을 이끌어내는 이들에 닿아 있다.  그들의 생각, 활동, 생활 안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념, 사상, 고민들을 드러내 보인 작업이다.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들의 주장은 너무 과격하고 거친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그들은 거칠지 않았다.  이 섬 안에서의 저항은 모두 평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도 평화와 안정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정에서도 신공항 문제에서도, 이들을 거칠게 대하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이들은 추진하는 주체, 즉 도정이었고 공권력이었다.  밀려서는 안되는 싸움에서 거친 자극에 대항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의 거칠어짐이다.  그것은 다시 언론에 의해 부풀려지고, 외부세력, 폭력행위, 고소고발 등등의 단어로 이미지를 규정받는다.  나는 세상이 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 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 믿는다.  분명 옳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전반적 또는 국지적 환경에서, 그들은 옳지 않은 변화를 조금이라도 주춤하게 또는 더디게 만드는 역류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항자들의 내면을 바라볼 기회 없이, 보여지고 주어지는 모습과 단어들 만으로 그들을 거칠게 규정하는 수많은 보편 안에서, 그들은 힘들게 핍진의 시간을 이어간다.  


  강정에 이은 신공항 문제는 추진과 저항의 시간 안에서 수많은 생각거리들을 남겼다.  국회의원 마저도 대놓고 드러냈던 현지인과 외지인의 차별문제, 극한의 저항 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냈던 남성과 여성의 차별, 생각을 구성하고 조직함 안에서도 어려운 합의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라 불리는 마을과 청년회 등등이 드러내보인 가여운 인식의 모습들..  개인적으로는 신공항 관련 비자림로 확장 반대 문화제에서 보인 마을 청년회의 작태들에 공동체에 대한 깊은 실망과 상처를 안았다.  강정의 사후에도 그러했듯, 공동체는 각자와 일부의 이익에 충실한 이기와 무지의 집합체일 뿐임을 깨닫게 해 준 계기였다.  이후로 나는, 공동체와 마을이라는 어떤 결속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설령 자본주의의 심화에 따른 불가항력의 변화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실망했던 공동체의 속내는 지금 선흘리 동물테마파크 추진 과정에서도 틀림없고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울림과 주장의 어떤 경계가 있다면 이 책은 경계 바깥의 소리가 아닌 경계 안의 직조된 현들을 직시한다.  현들의 울림은 어떻게 시작되며 저마다의 울림은 어떻게 구성되어 경계 밖의 소리로 퍼지는가..  그 안에서 우리가 공감하며 느끼거나 고민했던 것들의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글쓴이는 수유너머의 일원답게, 글은 간결하나 가볍지 않다.  나는 여전히 공감하는 회색인간으로 이 책을 읽어냈다.  그리고, 세상의 보편적 시선을 넘어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좀 더 단단하게 다독였다.  그리고 공감과 지지는 현실 안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금 깨닫고 움직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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