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본능적인 방법이나 이성적 의지로 조절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건, 노년의 성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생각은 노년의 성이라는 주제를 벗어나 가지를 치기 시작하더니 결혼이라는 제도와 인간관계의 자유로움을 거쳐 결국엔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 라는 매우 이상적이며 혼란스러운 주제에까지 닿게 되었다.  자유로운 인간의 상호관계는 상호호혜적이며 평화롭다는, 나름의 내 생각이 가 닿고자 하는 잠정적 결론은 말 그대로 '이상적이며 혼란스럽'기에 쉽게 설명을 이어나갈 수는 없지만, 우연히 집어든 이 소설을 통해 고민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음은 새로운 자극이었다.


  통제는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시인 이적요의 욕구가 '늙은이의 주책'이라 스스로나 타인에게 재단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통제해가건만 은교에 대한 그의 욕망은 결국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그러나 그 사이의 과정에서 그의 몸과 마음은 은교에 대한 욕망에 가감없이 반응하고 표현한다.  제도와 사회의 금기가 과연 본능에의 금기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그 부분에서 끊임없는 자기갈등을 힘겹게 겪어내다가 결국 둘 사이의 관계를 질투한 서지우의 계략에 의해 절망에 빠진다.  노랑머리 사나이의 거침없는 모멸적 발언에 자신의 늙은 육신의 초라함과 주책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인정해버린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다시금 정당화하려는 노시인의 이후 행보는 무척 정밀하고 무서워진다.  제자의 젊은 육신마저도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투쟁하며, 마음을 다해 아끼고 사랑하던 은교가 제자의 젊은 육신에 의해 농락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치밀한 방법으로 제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절제라기보다는 끊임없는 자기싸움과 인식의 틀 언저리에서 괴롭게 갈등하던 노시인은 결국 자신의 육신과 자신의 제자를 극단으로 몰아넣고야 만다.  노시인의 마음과 행위는 어떻게 이야기되어져야 할 것인가..  나에겐 그의 갈등과 사랑과 욕망과 분노는 애절한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 소설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시인 이적요와 은교,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 그리고 서지우와 은교..  그리고 작가가 소설안에서 얼핏 보여주는 문학계의 통상적인 모습..  문학계의 통상적인 모습은 여느 사회나 다름없는 현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으로 이해한다면,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관계는 사회의 인식틀 안에서 해석하자면 주책맞거나 사뭇 변태적이거나 위법적이다.  사회의 인식틀 안에서 이 소설을 평하자면 읽어서는 안 될 유해물이 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갈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갈등과 괴로움을 겪어내야만 하는 인간의 본능과 마음에 대한 절절한 묘사가 된다.  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욕망과 사회제도/인식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마찰이, 때로 부담스러운 부피나 극단의 모습을 지닌 비인간적 행위나 마음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노시인 이적요의 욕망은 자연스러웠기에, 생의 주기를 떠나 그것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적나라한 성애 묘사에 대한 호기심을 떠나, 인간 전반을 지배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본능, 그리고 인식의 갈등 또는 마찰에 대해,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깊은 고민을 이끌어내고 있다.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다는 갈망은 이런 고민과 연결되어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