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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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그닥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내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곳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아 몰살에 가까운 원시문화의 멸망을 겪은 후, 현재의 시간까지 수많은 세계사적 현상의 변두리에 있었음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듣게 되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냥을 나가는 이들이 며칠간을 풀로만 식사를 하며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거친 뒤 움직이면, 사냥의 대상이 될 동물들이 그들을 따라나서며 교감을 통한 먹이사슬의 순환에 수긍한다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아마존의 깊은 밀림속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어쩌면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소설속에서 표현하는 마술적 세계는 실제하는 현상에 기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술적 감각이나 신비로움도 존재하지만, 소설속의 공간은 어쩔 수 없이 비현실적이지만은 않은 우리와 같은 인간들의 세계이고, 그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현상들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시작과 끝을 통해 인간의 문명과 사회가 시작되고 저물어가는 모습은 인간의 흥망성쇠 그 자체이다.  게다가 흥망성쇠의 과정이 자본과 권력의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동시에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마꼰도는 성서적이기도 하다.  사람을 죽인 원죄를 짊어지고 늪지대에 터전을 잡은 인간이 노동으로서 자리를 만들고 사회를 만들며, 고독을 달래려 성적인 교류를 나누는 모습의 대부분은 창녀나 집시와의 관계이자 근친상간이 대부분인 모습은 구약 초기시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전쟁이라는 인간의 싸움에서 퍼뜨린 자신의 수많은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마에 십자가의 부적을 받고 하나하나 죽임을 당하는 모습은 대를 이은 정죄를 연상케 하며, 근친상간으로 인하여 집안의 대가 끊기는 모습은 금기를 행함의 대가로 보이며, 그 모든 것들이 예언되어 있었다는 마지막은 묵시록을 연상케 한다.  신비로움과 현실성, 마술성과 합리성이 공존하고 뒤섞인 마꼰도는 성스럽고 타락했으며, 모여있으나 외롭고, 평화롭고자 하나 억눌림과 탄압을 겪어야 했던 종교적 인간사회의 현실적 축소판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문장은 무척 신비로우며 마력이 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그랬지만, 그의 문장에는 본능에 기초한 인간의 자유를 느끼게 하는 어떤 관능이 서려있다.  풍부하고 부드러우면서 육감이 살아있어, 읽다보면 마치 잠자고 있던 몸 안의 관능적인 매력이 깨어나는 듯 하다.  그 관능은 너무 마술적이어서 합리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과 표현까지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끔 한다.  그러다보니, 자본과 권력이 인간을 휘두르는 대목에서는 그것이 그닥 심각하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자연상태에 있다거나 자연 자체가 글을 통해 읽는 이에게 다가올 때에는 구체적이지 않은 자유로움과 풍부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미녀 레메디오스가 침대시트를 붙잡고 승천하는 어처구니없는 대목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신기한 독서경험이라니..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펜에는 분명 어떤 마술적 힘이 서려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진지하면서도 신비롭고 애처로우면서 아득한 느낌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 몸에서 활짝 피어오른 관능과 함께 오래도록 진지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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