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이후의 삶 -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
한홍구.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대담, 이령경 옮김 / 반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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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우리는 비를 맞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들을 수 있었다.  방사능물질이 비구름에 섞여 내리기 때문에 맞으면 안된다 말했던 것인데, 어릴적의 기억에도 핵에 대한 경계심은 딱 그 정도였다.  어른들은 더이상 핵에 대한 걱정이나 우려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후의 성장과정에 있어 핵은 '핵'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되지 않았다.  '청정에너지 원자력'으로 회자되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핵과 원자력을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2년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붕괴된 이후를 생각해보면 어릴적의 '적당한 걱정과 우려'수준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유행하다보니 우려와 걱정의 이야기는 많아졌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현상은 루머와 편견으로 치부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약간의 걱정을 마음에 담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후쿠시마는 바로 이웃나라에 존재하는 곳이고, 우리는 수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한 국가라는 현실속에서 말이다.


  후쿠시마는 소수자의 영역이 되어버렸고 버려진 땅이 되었다.  예전의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섬이 그렇듯 말이다.  공통적인 특징은 핵발전소를 통해 희생의 영역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첫째로는 다수의 삶이 존재하는 거대한 도시의 전력을 위한 희생이었고, 두번째는 핵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국가와 핵마피아 집단들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다.  처음부터 낙인찍힌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낙인이 찍혀 지금까지 이어온 자신들의 삶을 더이상 이어나갈 수 없는 희생자이자 버려지는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핵의 문제는 단지 과학으로 말하는 핵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권력과 그것이 비호하거나 그 자체인 핵마피아집단의 이익문제, 국가간의 알력의 문제, 그리고 파괴적인 현상과 존재인식에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소수자의 문제까지, 그리고 방사능은 시간을 거쳐 서서히 문제를 만들어내는 특징도 있기에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도 고찰해볼 수 있는 인간의 삶의 문제이다.  거기에 핵물질의 집적과 분산에 따른 먹거리와 환경에 대한 실질적 문제까지 고려해본다면 우리는 지금 후쿠시마의 문제를 이렇게 '가벼운 걱정거리'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또 한가지 더, 고리원전이나 영광원전등의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핵발전소의 현재운영상태나 설비의 안전성문제등등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핵전문가가 아닌 비핵전문가들이 핵에 대해 문화 역사 예술적인 부분에서 폭넓은 고민을 나눈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비과학적이니 너무 앞서나간 걱정이라 폄하할 수 있을까?  문제는 핵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들에서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데에 있다.  녹색평론에 여러차례 실려왔던 여러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생체에 있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방사선량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핵발전소 기술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설비의 비효율성과 편법, 그리고 임시방편적 관리에 대한 증언을 고려해보면 핵발전소는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느낌이다.  그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핵에 대한 일반적인 걱정이나 우려는 어느 경우에서나 과하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으며, 이제까지 보여진 현상론에 근거하여 저자들의 좌담과 같은 폭넓은 고민과 반성, 그리고 제안은 객관적 힘을 가질 수가 있다.  거기에 핵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보여왔던 국가권력의 은폐노력은 이러한 생각들에 무게감을 더해왔다. 


  개인적으로 핵에 대한 걱정이 존재한다 해서 삶의 모습이 극적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에 관련된 모든 현상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든 현실이다.  직시해야 할 것은 여전히 핵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 하고 국가간 폭력적 긴장을 증가시키려는 국가권력과 핵마피아에 대한 직시와 경계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세대를 넘어 이후의 세대들을 위한 의무가 아닐까?  현실은 수명을 다한 고장난 원전을 억지로 가동시키고, 신규원전 유치에 지역정치꾼들과 그에 선동된 주민들이 유치찬성을 해대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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