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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의 사유에는 각자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동시에 사유는 얼마만큼 깊어지며, 깊어지다 자신만의 것으로 굳어지는 관념적 지점은 어디일까?'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며 접한 철학이 자신의 사유에 많은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여러 생각의 근간들이 일기의 곳곳에서 보인다. 때로 보이는 나의 생각과 살짝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에서는 사유의 방향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내가 전공한 것과는 다른, 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사유의 바탕은 단지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인가? 마주한 사유의 바탕을 통해 나는 바른 방향으로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일기의 주인공은 과연 어떤 곳에서 그런 사유의 바탕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일기는 저자가 사망하기 전 몇 년간의 기록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 수록 생각이 굳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생각은 마지막 숨이 멎을때까지 유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의 까칠하기까지 한 판단과 비평에서 그런 굳어진 생각을 느낀다. 물론 아집이라기 보다는 견고하고 단단한 바탕이다. 스스럼없이 판단하고 비판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판단력은 시간과 관념적 깊이의 어느지점에서 굳어지는 것인가, 또는 완성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고 동시에 좀 더 조심스럽고 유연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에는 주로 시에 대한 비평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시를 잘 모르기에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고, 소설에 대한 비평에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평이나 분석, 그리고 작가에 대한 생각을 풀어낼 때에는 서슴없는 판단과 비판이 시원시원하다. 그런 판단과 비판의 근원은 어디에서 완성된 것인가. 나도 스스로의 판단에 있어 이런 시원시원함을 언제쯤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에 나오는 생각의 편린들은 판단과 비판의 모습들과 어떤 연계를 가지는가.. 때로의 아집도 보이지만 부족하지 않게 채워진 생각의 바탕을 느끼며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는 책이었다. 남의 일기를 읽는 일이란 나를 돌아보는 일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