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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안내서
존 벨라미 포스터 & 프레드 맥도프 지음, 황정규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환경주의를 논하는 입장에서 과연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과 기대는 제목을 보면서부터 들게 된다. 아무리 파괴적인 자본주의의 속성이라 할지라도 지구라는 닫힌 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면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접점이라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책을 집어든 다음, 끝까지 읽고나면 그런 기대는 무척 순진한 발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환경주의와 자본주의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대척지점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환경의 파괴는 시작되었고 그것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행위였다. 비옥한 토양에서 오랜시간의 경작은 결국 토질과 양분을 서서히 소모시킴으로 척박한 토양으로 변화시키고 인간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개간을 함으로서 주변환경을 파괴하고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는, 자연 스스로 회복이 가능했던 파괴였다. 척박함을 이기지 못하고 인간이 떠나면 자연은 서서히 그곳을 원래상태와 가깝게 회복을 시켰던 것이다. 문제는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시작에서부터였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은, 환경은 그저 이윤획득의 자원이자 수단일 뿐, 보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속성'.. 이것이 환경과 공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고, 현재의 사회는 자본의 지배하에서 환경은 무참하게 파괴당한다.
자본과 환경이 공존할 수 없음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번성은 환경파괴를 극대화시키고 자본주의의 후퇴는 환경파괴를 더디게 한다. 그러면 자본이 더욱 쇠퇴하게 되면 환경은 더욱 보존의 기회를 얻게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경우,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윤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그나마 보존을 위해 개발제한을 해 둔 환경-이를테면 그린벨트같은..-을 자본의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어버린다. 자본은 철저하게 자신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환경을 이용할 뿐이다.
환경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존재임은 이미 상식이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상식적인 일들을 애써 외면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5년간 녹색분칠을 통해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치장해놓은 토건자본의 만행들을 익히 보아왔다. 좀 더 적극적으로 자본과 환경의 타협점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임스 러브록같은 환경과학자는 청정에너지의 대안으로 원자력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 더이상 원자력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생존의 위협을 느껴가며 깨달았다. 이 책에서도 주장하지만, 우리가 환경의 위기를 통해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면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하여 자본에 반기를 드는 생태혁명을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 타협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웬델 베리가 추구했던 지역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동체 추구적인 저기술 해결책과 같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위기를 느끼고 고민을 준비중에 있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리감은 무척 크기만 하다. 세상은 그런 고민들을 마치 종말론에 빠져버린 인간의 허무를 대하듯 조롱하기만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이 과학적으로 주장하는 바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우리는 정말 우리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소유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은 단지 편리를 위한 것들이 아닐까? 필요와 편리를 구분해야만 한다. 그리고 단지 편리만을 위한 소유라면 그것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본의 폭주를 제지시킬 것이며, 필요한 것들이 소유의 대부분을 채우는 삶이라면 그것은 자본의 효율을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사회가 될 것이다. 동시에 이는, 환경에 가장 도움이 되는 형태의 사회일 것이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생태적인 삶에의 구체적 고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존과 지속은 그렇게 함으로써 가능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