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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의사인 나도 헬라세포라는 단어는 종종 들어보았다. 임상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교과서나 논문에서 종종 들어보았던 이름은 그저 여러 다양한 실험대상세포 중 한 종류로서만 인식되었다. 과학은, 이제까지 이루어져 온 토대를 당연하고 가벼운 현재의 결과로 인식하고 미래의 숙제에 너무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숙제에 치중하는 과학의 입장에서 과거는, 잠시 머리를 식힐만한 잔잔한 이야기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종종 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헬라세포의 과거이야기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헬라세포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의학적 생물학적 숙제를 해결하려 골몰하는 현재에, 그 유명한 헬라세포는 과연 어떻게 태어났고 이제껏 어떤 역사를 만들어왔는가를 돌아보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냥 머리식힐만한 잔잔한 이야기는 아니다. 헬라세포의 역사 안에서,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또는 도의적이거나 합법적인 문제의식을 들추어보는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헬라세포의 탄생에서부터 이제까지의 역사엔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지닌다. 첫째는 헬라세포의 모체인 헨리에타 랙스가 흑인이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의 문제가 불거지고, 두번째는 헬라세포라는 인체조직을 사용함에 있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합의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의 관점은 사실 수많은 인식들이 형성된 상태의 현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전히 보편적인 삶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이는 헨리에타 랙스일가의 모습에서 문제는 더욱 부각되어진다. 모든 것이 인종차별적 구조안에서 이루어졌던 시대에 병원안에서 흑인들에 대한 대우란 그닥 다르지 않은 상황과 인체조직을 사용함에 있어 윤리도덕적 문제의식이 희박했던 시대의 상황은 헨리에타 랙스의 암조직을 채취하고 활용하는 데에 있어 의료인으로 하여금 어떤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며 인체조직 활용에 대한 윤리도덕적인 그리고 법적인 인식은 체계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헬라세포는 여전히 광범위한 실험에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이런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현재 우리의 판단의 틀이 법적인 테두리안에서 이루어지며 안게 될 이러저러한 복잡한 부담들과 다툼들에 대한 두려움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헬라세포는 단지, 도의적인 인식과 기념차원에서 머물러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헬라세포의 존재를 알게 된 랙스일가는 현재의 삶이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맘은 더욱 복잡해졌고 헬라세포의 과거를 알아내려는 이들의 접촉에 무척 귀찮아하기까지 한다. 헬라세포가 증식하게 두면 다시 엄마로 재생하는 거 아니냐 말할 정도로 그리 지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은 그닥 행복해보이지 않는 미국의 흑인하층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헬라세포 자체이던, 헨리에타 랙스의 자녀들의 삶의 모습이던 어느것 하나 쉽게 법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를 따지지 못한다. 어느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는 인식틀의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로 남아버린 헬라세포의 문제는 단지 우리에게 어떤 자각을 끊임없이 요구할 뿐이다. 여전히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중요하여 널리 활용되지만, 그에 대한 윤리도덕적인 문제는 논외로 남은 헬라세포의 이야기는 아쉽지만 딱 그 지점에서의 딜레마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