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싸우는 사람들 우리시대의 논리 14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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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이 법을 다루는 이들의 폐쇄되고 모순된 모습을 고발하며, 법이 독점된 권력이 되며 사람들과 얼마나 거리감있는 존재인가를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그런 독점된 권력에 대해 힘없는 일개 인민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글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번째, 여기저기 인용된 법정대화록이나 판결문 등의 단어들이 너무 생소해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  두번째,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 속에 줄줄이 겹치고 꼬여있는 소송들이 개연과 인과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이 책의 내용이 어렵거나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이 현상은 조금은 다르고 깊게 해석되어야 한다.


  첫번째로 수많은 법률용어들이 난해하다는 것은, 법이라는 인간의 질서규범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어와 개념을 일부러 어렵게 만듦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거리가 생긴 법을 전문가라는 집단이 독점화하면서 거리만큼 권력을 거머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법이 존재하는 위치를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두번째로, 소송이 줄을 잇는 것은 벌써 20년 이상을 자신의 억울함을 벗기기 위해 스스로 법을 공부하고 공부한 법대로 소송을 이어가는 일개 소시민의 싸움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보면 너무 곧바르다거나 끈질기다거나 아니면 지저분하게까지 보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권력화된 법 앞에서 일개 소시민이 소신과 진실을 앞세워 싸울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다가 권력이 주는 위압을 이겨내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진 사건개요와 줄소송은 법 앞에 선 소시민의 현실을 상징해주는 모습인 것이다.


  재밌는 것은 재판의 진행과 판결에 따라 진실은 수시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이 주장하는 사건개요가 마냥 사실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독자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법정싸움이 이어지는 내용을 읽다보면, 재판이 길어지고 판사가 바뀌고 변호사가 바뀌며, 원고와 피고, 증인과 증언이 반복되고 바뀌며 진실과 거짓, 이해와 판단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법에 따른 판단도 사람의 일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상인걸까?  아니면 권력화 된 법의 테두리에서 이를 다루는 사람들의 어떤 매너리즘이라 해도 되는 걸까?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주인공의 싸움과, 법적 억울함을 가지고 조직까지 만들어내며 법과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면,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존재함은 확실한 법적인 어떤 허점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법은 무척 먼거리에 있음을 느낀다.  그런 법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힘이란 무척 미욱해보인다.  지리하고 지저분해보이기까지 한 이 싸움을 끝까지 읽고도 뭔가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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