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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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직장이라 믿으며 지방 도시에서 가정을 꾸려나가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이들.  때로는 다른 노동자보다 급여많고 복지혜택도 많아서 '부르주아 노동자' 등등의 비아냥섞인 말들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을 이들.  탄탄한 직장과 안정된 생활이 주는 안락감은 세상일에 관심을 가짐으로 방해받고 싶지않은 어떤 소중함이었을지 모른다.  세상이 태평하면 왕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옛 말이 한때의 이들에게는 당연한 말이었을지 모른다. 


  절박함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이 딛고 선 바닥이 탄탄한 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실은 얇은 나무판자였고, 이제 그것이 걷어지면서 대다수의 누군가는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한다는..  누군가는 불안하지만 나무판자 위에 서고 누군가는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산 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싸움.  그 싸움은 거칠게 판자를 걷어내는 이에 대한 분노와 함께 어제까지 함께 서 있던 이들과 처절하게 다투어야 한다는 비참함이다.


  국가의 부에 걸맞은 국민의 기본적 삶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회에서 자본의 이기심만으로 재단된 칼에 의해 설 곳없이 나락으로 급격하게 떨어져야 하는 현실은 전쟁의 트라우마에 비교된다.  여기에 자본의 편을 든 국가의 공권력을 이런 절박감에 맞선 노동자의 저항에 대고 '폭력의 실험장과 경험장'으로 알뜰하게 사용한다.  그 무식함은 트라우마를 극대화시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스스로 죽게 내몬다.  뒤늦게서야 이들을 감싸안고 위로하는 것은 국가도 자본도 아니었다.  극악한 현실에 마음아픈 또다른 사람들이자 노동자들이었다.  쌍용차의 저항은 국가/자본이 그리고 공권력이, 국민/노동자와의 거리가 얼마나 먼 존재이며 얼마나 위압적인 존재로 군림하려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팩트 자체로도 글은 힘을 얻는다.  요즘같은 세상에선 험한 일들이 하도 많다보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팩트에 작가의 감성이 실리면 이렇게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그리고 아프다.  마치 아물어가는 상처에 염증이 도지며 뜨겁고 불편해지듯,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상처라는 듯, 책을 읽어나가며 읽은 후의 마음은 이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던 쌍용차라는 간접적 트라우마를 다시금 꺼내어 짓이기듯 답답하고 아프고 괴롭다.  쌍용차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상처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니 시선두기에 지쳐하지 말고,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듯 뜨겁게 짓누른다.  그리고 이는 절대 남의 일만이 아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임을 무겁게 상기시킨다.  우리는 언제까지 통제를 상실한 자본의 난도질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사족 : 공지영 작가가 이 책을 펴내면서 불거진 하종강 교수와 이선옥 작가와의 논쟁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인용의 문제에 있어 공지영 작가의 실수이자, 이에 대한 대처과정은 공지영작가의 명백한 잘못이라 생각한다.  2쇄 이후의 대처에 대해서도 사후 대책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에도 작가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 독후감은 전적으로 내용에만 충실하여 작성한 것이다.  작가의 어딘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확장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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