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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한없이 끌어들이는 이 소설을 딱히 간결하게 표현할 길은 없다. 사람을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파도속에서 무참히 휘둘리지만 그 재미와 매력에 빠져 바다속에서 나오질 않는 초보서퍼의 마음처럼 형식도 내용도 종잡을 수 없는 격랑속에서 읽는 사람은 책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어쩌면 그 옛날 공연장의 만담가의 실없는 농담에 폭소를 터뜨리며 한없이 빠져드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집어낼 수 없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이렇게 빠져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시니컬한 그림체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시작하여 정감넘치는 선의 정신없이 움직이는 근대민화의 느낌을 거친 뒤 부드럽고 소박한 색채로 그린 수채화의 감성으로 끝나는 형식의 느낌도 그렇고 현실성과 비현실성, 본능과 이성이 뒤섞이다가 뭔가 이상할때쯤 작가의 첨언으로 가벼이 눙치고 지나가는 뻔뻔함.. 마치 어두워진 시장터 막걸리집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며 듣는 이야기처럼 가볍고 재밌고 능글맞다.
그러나 아무리 글에 재능있는 천재라도 쉽게 써내어 좋은 글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은 써내려가는 이의 직간접적 경험과 생각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아직은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내려가고 있는 중이지만 '나의삼촌 부르스리'와 엮어서 생각해보자면 작품들 안에 간접적으로 녹아있어 배경이 되는 근대사적 역사, 그 역사의 폭력과 뻔뻔함을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하나는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 생각하는데 육체의 가장 근본에서 발산하는 본능과 본능에 따른 충동성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는 성범죄자로나 낙인찍혔을 일들이 소설속에서는 자연스럽고 이해가능한 일로 서술된다. 본능은 구체적인 향기나 분위기 또는 모습으로 서술된다. 본능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충동질하여 관계를 엮어간다. 그 본능에도 작가특유의 과장이 섞여있겠지만, 본능에 의해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는 사건을 만들어가며 번잡하고 현란한 인생사의 모습을 만든다는 데에 있어서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심사평의 한 대목, 전통적 소설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게 별로 없다는 말에 극히 공감했다. 물론 내가 소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위한 작품같이 어렵기만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소설보다는 재미를 추구하고 때로는 개똥철학으로 눙치면서도 흐름을 잃지않고 전반적으로 녹아흐르는 생각의 배경과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는 형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내가 요즘 '천명관'이라는 작가의 작품들 속에 푹 빠져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