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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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과 지배의 역사에서 이의 주체들이 언제나 내세우는 것은 '억압받는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인민은 최대의 피해자이자 희생자가 된다.  역사의 순간순간 있었던 제노사이드 또는 학살에 있어서는 인민 자체가 목표가 되었고, 그런 순간역시 가장 힘없이 사라져가야 했던 이들은 인민이었다.  


  어쨌거나 인간역사의 모든 충돌에 있어 인민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시에 인민은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었지만, 어떤 이유로든간에 적군에 의해 또는 아군에 의해 가장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였고 그렇게 죽어간 존재들이었다.  625당시의 국민방위군도 그렇고 노근리나 거창양민학살사건 등등이 우리의 역사 안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민학살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학살은 기록마저 불분명한 채, 누군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아서는 안되게 하며, 희미하게 남은 생존자의 기억과 입 언저리에서나 떠도는 이야기로 존재할 뿐이다.


  인민학살의 역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중이고 조 사코는 그러한 역사 중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침탈과 희생의 역사를 글과 그림을 통하여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그는 1956년 가자지구 내의 칸 유니스에서의 학살사건에 주목한다.  현재의 기록만큼이나 과거의 사건을 발굴하는 작업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의미없이 죽어간 이들을 기억함으로서 현재의 시간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그런 희생을 겪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는 제목 그대로 1956년 칸 유니스 학살과 연관된 이들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기억을 되살려내어 기록한다.  이미 노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그들의 기억은 많은 부분에서 불분명하지만 조 사코는 퍼즐조각 맞추듯 증언들을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일치하는 것들을 맞추어가며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해 나간다.  인민 속에 숨은 팔레스타인 병사들을 찾는다는 구실로 자행된 이스라엘군의 학살은 나름 형식적이면서도 잔인한 폭력이었다.  길거리 곳곳의 담벼락에서 남자들은 총에 맞아 죽어갔고, 학교로 집합하는 과정에서 길을 가다가 총에 맞아 죽어야했고 학교에서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죽어야했던 인민의 기록이 완성된다.  하지만 조 사코는 이게 아주 정확한 재구성인지에는 스스로에게도 의문을 던진다.  50여년의 시간속에 애써 가라앉혔던 노인들의 트라우마를 다시금 꺼내게 만든다는 것의 괴로움과 저마다 기억의 혼란과 어긋남 속에서 기록은 정확성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자지구는 지금도 이스라엘의 은근한 군사적 압박속에서 이유없이 집을 잃고 팔과 다리를 잃어야만 하는 처참한 상황이다.  누군가가 조 사코에게 소리지른다.  "1956년이라구요?  지금이 1956년입니다.  대체 달라진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현재의 고통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억의 재구성은 사치였던 것이다.


  부록으로 실린 1956년의 문서와 자료를 살펴보면 그러한 학살을 자행한 주체들은 인민들의 증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보관된 문서 안에서도 학살의 규모는 증언보다는 작고, 상황에 대한 나름 정당성있게 해석되어있다.  그리고 현재의 이스라엘이 가자 접경지역에서 행하는 거주지 파괴작업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그들은 그들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그런 작업을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공식적인 입장과 자료, 증거는 언제나 파괴의 주체, 전쟁의 주체, 학살한 자에 의해 기록되고 보관된다.'  이는 곧, 희생당하고 억압받고 학살당한 이들에 의한 기록은 전무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언제나 약자인 인민의 기억과 전쟁과 파괴와 학살의 주체가 남긴 기록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한 건, 그래서 인민의 입장에서 쓰여진 증언과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안네의 일기가 주목을 받은 건 그런 이유때문이 아니었을까.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노동자의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역시 마찬가지이다.  문득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작은책 편집장 안건모씨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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