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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어떤 고전의 느낌이라는 것, 그것은 엄청난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읽는 순간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은근한 힘이기도 하다. 그것은 고전을 탄생시킨 작가에 대한 존경과 시선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하다. 어떤 부분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깊은 글로서 표현해낸다는 것은 블로깅이라는 행위를 통해 글로서 나름의 표현을 하고자 하는 나에겐 본받고 싶을 수 밖에 없는 시선이다.
러시아 노동자의 역사적 현실과 변화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서 시간을 초월한 공감과 지금의 현실을 느끼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작가가 지닌 시선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별다르게 변화한 것 같지 않은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다. 물론 작품에서 보여지는 자본가와 공권력의 노골적인 패악은 없어진 지 오래이고 노동자가 자본가에 굴욕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들이 노동자의 의식을 유린하는 방법과 억압하는 모습이 그다지 차이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유린당하며 살아온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부당한 현실과 부당하게 억압해오는 자본시스템을 깨닫기까지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억압을 이겨내려 책을 읽고 전단을 돌리는 과정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움은 마치 지금의 노동자들과 약자들이 그들의 현실을 알리려 소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불평등과 이를 이용하여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그런 행위들을 억압하는 모습 역시 노골적임에서 좀 더 은밀하고 교묘해졌다는 점을 빼놓고는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노동자 아들의 뜻을 잇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맡은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외람될 수도 있지만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이소선 여사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의 원인을 깨부수러 나선 아들을 이해하며 자신의 그러했던 삶의 이유를 알아나가는 어머니의 모습 역시, 억압받는 삶을 마지못해 꾸려나가야만 했던 또다른 노동자의 모습이다. 자신이 왜 그렇게 우울하고 노출된 폭력하에서 살았어야 되는가에 대한 의문은 결국 남편만의 문제가 아닌 남편을 포함한 사회의 문제, 철저한 억압을 통해 불행을 강요하는 시스템의 문제였고, 어머니는 그것을 아들을 통해 깨달아나간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희망을 알게 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아들만큼이나 나이든 어머니에게도 고통과 모멸의 시간이었다.
이제 희망은 왔는가. 100년전에 쓰여진 작품에서 갈구한 그들의 희망은 이제 이루어졌는가. 먹고사는 일, 즐기는 일이 많아져서 만족에 차 있다 이야기하면, 작품속에 그려진 우울함과 노골적 폭력에서는 벗어났다 이야기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내면과 사람들의 성토를 듣고있노라면 그렇다 말하기엔 너무도 힘들다. 우리가 왜 고통받고 있는지는 이제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가 크레인 위에서 죽어나가고 309일을 버티며 시위해야만 일말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뿐이라는 현실은 여전한 불평등을 유발하는 시스템의 건재함을 깨닫게 한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1500일을 넘게 거리시위를 해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결국,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일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은 100년이 넘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만 깨닫는다. 시간을 초월한 고전의 힘.. 고전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일.. 언제나 고통가득한 존경심으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