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루쉰 문학 선집
루쉰 지음, 송춘남 옮김, 박홍규 해설 / 고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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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고전인 이유, 그것은 과거의 모습으로 하여금 현재를 비추어보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여전히 변하지 않거나 반복적인 불의를 보며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고전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는 고민과 반추를 가능케 해주는 버팀목이자 방향키이다.  사상가의 말과 글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사상가는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시대를 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사고를 제공해준다.  이 역시 근본을 꿰뚫는 사상이 언제나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부조리와 불합리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전히 잃어버리거나 덮어버릴 수 없는 근본적 틀임에는 변함이 없다.  


  루쉰이 루쉰인 이유, 우리에게 아직도 루쉰이 마음깊이 자리할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우리가 루쉰의 글에 칼날의 서늘함을 느끼고 마음을 다하여 공감하는 모습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것은 부정하고 불안한 제도와 권력에 온 마음으로 저항하며 저항의 근원을 인간사상의 뿌리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적확한 표현과 깊이있는 비유 가득한 글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케 하고 생각의 바탕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정립된 생각의 바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도 둔중한 울림을 주는 탄탄함 그 자체이다. 


  개인적으로 루쉰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리영희 선생님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근본을 꿰뚫는 성찰의 방법, 실천의 방향에 대한 글은 리영희 선생님의 언제나 진실을 바탕으로 한 비판과 균형을 유지케 하였다.  그것은 철근상자 안의 몽환에 취해 서서히 죽어가는 이들을 깨워 벽을 두드리게 하는 괴로움이요, 먹으로 쓴 거짓말을 밝히기 위해 피로 쓴 진실을 헤집어 내는 고통의 모습이었다.  루쉰의 글이 아직도 마음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아수라의 세상에서 루쉰의 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상처를 안고 괴로움과 고통을 받아들이겠다는 자기선언이나 다름없는 일인지 모른다.  노년이 되어서야 아파트라는 편리한 인간문명을 접하고 감탄했던 리영희 선생님의 모습은 그러한 자기희생을 증명하는 자그마한 일화였을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잘 알고있는 아큐정전같은 루쉰의 소설은 없다.  단지 이곳저곳에 발표한 글과 편지, 생각을 짧게 서술한 글들과 고대중국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단편소설 몇편이 수록되어 있다.  루쉰의 소설이 그러했듯 이 책에 나오는 루쉰의 비유는 조금 어렵다.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고 당시 중국사회의 소소한 현상이나 사건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루쉰의 이러한 난해한 비유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루쉰의 글에서 현대사회에서도 적용하여 생각해볼 만한 페미니즘적 내용이나, 이반일리히, 웬델 베리, 피에르 라비등의 사상가들과 일맥상통하는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선하고 반가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알던 루쉰의 또다른 새로움이었다.  900여 페이지의 긴 글이지만 단문의 조합이라 읽기에는 부담스럽지 않다.  편하게 읽어내려가면서 루쉰의 전체적인 생각을 독자로 하여금 정리하게 만드는 책이다.  단 한권으로 루쉰의 거의 모든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그의 단편소설들을 다시 한번 더 읽고 싶다는 기대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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