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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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남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있는 곳에서는 배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내게는 언제나 이성적인 생각을 빼앗기고 감성에 푹 젖어버리게 만드는 그곳은 사람들의 인식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남도로 존재한다.  하지만, 남도는 예전의 남도가 아니었다.  새로운 길을 만들고 고속도로를 만든다며 여기저기 파헤치고 산을 깎아내리며 필요없는 도로확장등으로 흙먼지가 날리고 포크레인 삽날소리가 가득하며 돌깨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짙푸른 숲 사이사이로 드러난 벌겋고 회색빛의 속살들..  마치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중환자실에 누운 환자들같았다.  어떻게든 이 통증을 가라앉게 해달라는 이들의 절규, 그 절규는 비단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허리를 패인 저 산들 역시 나에게 절규를 하고 있었다.  너무도 아프다고..  마음이 아려오고 이성의 사고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문득 한탄스런 바램이 생긴다.  그냥 있던 그대로 두면 안되겠냐고..



  절규는 그런 말없는 자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삶도 지금은 곳곳의 절규투성이다.  소설속의 한 대목처럼,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곳곳마다 싸우지 않는 곳이 없다.  소셜네트워크의 힘을 빌어 유성과 전주와 부산 영도와 제주 강정이 주목을 받고 있어 그나마도 다행이지만 소소한 곳에서 소소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주목받지 못한 채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 대한 소설형식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사람이 지금껏 살던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임에도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자본의 이윤추구와 공정성이라고는 그닥 느껴지지 않는 합법이라는 판단아래, 사람들은 당연한 권리마저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 단지 살던 그대로 평화롭게 살게 하는 것이라 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생존의 기본권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자본의 본성과 자본을 획득한 이들의 권력적 속성을 논함을 떠나, 그저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살던 이들마저도 투사로 만들고 내몰아버리는 사회가 과연 인간이 살 만한 사회일까?  사회적 낙오, 사회적 타살, 사회적 격리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세상, 그리고 그런 번 외의 인간영역이 점점 넓어져만 가는 지금의 흐름이 과연 인간사회의 당연한 현상이라 말해도 될까?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사회체제는 신석기시대였다는 인류학자의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이미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한복판에 문화와 문명이라는 편의의 세례를 받고 사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계급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시스템에 의해 낙오되는 사람이 최소화된 사회이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사회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들려오는 소식은 영도의 희망대오에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쏘았다는 것과 구럼비에서 아침기도를 하던 활동가를 연행해갔다는 소식이다.  억압당하고 고통받던 이의 자살소식과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겪는 고통에의 소식은 이제 점점 자극성이 줄어든다.  그만큼 평범한 이들의 저항도 점점 늘어난다.  돌공장의 소음과 먼지의 고통에 팔십평생 처음으로 데모라는 것을 해 본 할머니가 저승길에서 웃으며 한 말처럼, 안해도 될 것들을 해보고 사는 저항중인 우리도 지금의 세상은 '꽃같은 시절'인 것일까?  어쩌면 참 지랄맞게도 징그럽고 허탈한 제목이고 세월이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로 제작되어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도가니라는 소설은 이미 2년전에 발표된 소설이었고 실제 사건은 훨씬 그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물론 지금의 도가니 현상은 문학과 예술이 반드시 해야할 사회적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준 긍정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이런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이 사건 그 자체로서는 부족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의 역할과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것 또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뒤늦은 반응과 분노는 또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현상이다.  이 책이 '도가니'와도 같은 역할을 해 낼수 있을까?  사회적인 고발과 성찰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지만 아직은 반응이 시큰둥한 느낌이다.  꼭 그렇게만은 않더라도, 어디선가 평범한 삶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광범위하게 퍼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문학의 사회적인 역할에 매우 충실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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