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제프 일리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수, 꾸역꾸역 읽은 시간은 9개월..  이 책을 구입하며 좌파에 대한 어떤 기대를 함께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나의 실수인지도 모르겠다.  기대도 분량도 읽어나갔던 시간도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어떤 절망같은 것을 마음속에 심어주었던 과정들인 것 같았다.  그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들에 비추었을 때, 더욱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게 해 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좌파의 역사는 자본의 패악이 극에 달했을 때의 반동으로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반작용이자 반격이었다.  그래서일까, 좌파의 약진은 적어도 이 책이 이야기해주는 유럽이라는 공간 안에서만큼은 능동적인 때가 단 한번도 없어보인다.  자본을 거머쥔 우파와의 정당한 싸움보다는 자본구조의 약점이 두드러져 스스로 무너져내릴 때 반작용으로 좌파는 약진할 수 있었고, 때로 좌파의 성장은 우파의 헤게모니 안으로 잠식해 들어가면서 힘을 잃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좌파가 권력을 쟁취했더라도, 마치 권력의 짧은 유통기한을 증명이나 해주듯이 스스로 부패과정을 통해 힘을 잃어버리는 모습은 권력의 순환이나 인간사회의 어떤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했다. 




  좌파 스스로도 분명한 한계를 지닌 모습 역시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좌파내의 페미니즘이 약진할 수 있었던 것도 전쟁으로 인한 남성인력의 부족이 기회가 되었지만 그나마도 좌파내의 마초적 특성으로 인하여 여성들의 권익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이 1970년대가 되어서야 가능했던 사실은 좌파의 마초적 성향을 상징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좌파를 견제하던 우파가 내몬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서도 어떤 두려움이 증폭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영국 탄광노동자를 탄압하던 대처정부의 공권력이 보여준 잔인함이나 20여년전의 문화투쟁에서 보여준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압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문명국가 안에서도 공권력은 아무렇지 않게 잔인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들이 아니었을까.  이를 지금의 우리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에 대입시켰을 때,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폭압으로 억누르고 연행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그들의 실적으로 계산해내는 무식함과 잔인함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폭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저 두려움만 앞서게 만드는 일이다.  더욱이 권력이 자본에 넘어갔다는 극단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이윤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한 일방적 탄압은 과연 얼마나 폭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올까 하는 상상은 그 자체마저도 두렵게 한다.




  너무 좌파의 수동성과 의존적 속성만을 느낀 것일까?  물론 2차대전 중의 파시즘을 물리치고 지속적인 견제를 유지케 한 것은 좌파의 이념이었고 우리에게는 남미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좌파의 약진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좌파의 폭력성은 단계적으로 거세되어야만 했고 온건성은 부르주아 이념에 흡수되어 제대로 된 모습조차 파악하기 힘들어 진 것이 사실이다.  남미 좌파의 약진 역시, 너무도 극단적인 계급분리현상과 시기에 맞게 나타난 리더쉽의 조화가 만들어 낸, 어떤 의미에서는 특수성이 가미된 현상이라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직 좀 더 낙하해야만 하는 수직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암울함만 느끼게 한다.  결국은 인간사회란 가진자로 표현되는 우파와 저항자로 표현되는 좌파의 영원한 싸움과 순환으로 구성되는 것일까?  아직은 진정한 좌파의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가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일말의 기대감은 남아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좌파의 세상 역시 인민에 의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조금은 암담해지고 실망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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