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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가람 옮김 / 이매진 / 2009년 12월
평점 :
내가 그녀들의 미소와 친절에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참 기특하게도 고2라는 비교적 어릴때의 시기였다. 그때엔 대전엑스포라는 국가적 행사가 열렸었고, 학교차원에서 단체 관람으로 행사에 가게 되었는데 수없이 긴 줄을 기다려 들어가 체험한 많은 신기한 영상도 그랬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 남는 의문들을 던져준 이들은 당시 신조어와 함께 급부상하던 '도우미'누나들이었다. 정장제복차림의 날씬한 누나들의 흐트러지지 않는 웃음띈 얼굴과 미소, 몸에 밴 듯한 친절은 당시 친절이라는 개념의 변화를 완전히 뒤바뀌게 만든 일종의 변환점을 이끄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누나들은 자세와 표정만큼이나 마음도 착하고 친절할까? 혹시 속으로는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런 의문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남아있다. 물론 보여지는 친절의 뒤에 그들의 속은 이만저만 타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 깨닫게 되었지만, 제도와 자본으로 굴러가는 사회시스템은 사람들에게 마음과 진심을 다하여 친절하라 교육시키고 강요하기에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억지로라도 친절하게 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조금 엉뚱하고 착각같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둘러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생계수단적 자리보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주변에 수없이 많다. 대형마트, 백화점, 상가, 시장, 항공기 등등.. 이제는 일만 해서는 안되는, 마음과 진심이 담긴 친절을 표현해 내야만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친절을 담는다고 보수가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친절을 강요당하고, 그런 친절에 익숙해지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 사람들은 이제 시장이나 동네구멍가게를 '친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볍게 기피하게 된다.
대표적인 친절직업인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자본의 구조에 편입되며 어떻게 변화를 겪는가를 이야기한다. 강요된 친절은 감정의 왜곡을 낳는다. 일터에서 보인 미소와 감정적 대처가 집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속되며 감정적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는 개인에게 가장 편안하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서조차 마음껏 풀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 또한 모든 감정적 노동을 요하는 조건에서 지속되는, 마음과 불일치하는 표정과 행동의 친절함의 표현은 개인사적 감정과 행동의 흐름에 있어서도 부자연스러움과 혼란을 양산해낸다.
감정이 자본의 시스템에 편입되고 활용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자 순간 무서움과 울렁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람들과 종종 그것이 자기의 위엄을 확인하는 기제인 양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왜곡된 당연이 주는 폭력의 존재에 머리를 쥐어짤 듯한 짜증이 몰려온다. 자본은 노동과 감정을 지배했고 이를 통해 추가적인 투자없이 스스로 이윤을 극대화시킨다. 이제 인간의 무엇이 자본의 시스템에 편입이 될 것인가?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차가운 기계부품으로 진화 또는 퇴화하여 가는 것일까?
번역서의 부담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특히 이런 논문류의 글을 번역하여 책으로 내는 것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아픈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인터뷰 내용을 예시로 많이 배치하여 이해를 쉽게 하고 부담을 줄이긴 했지만, 역시 논문류의 글은 평이하게 읽기에는 부담이 많은 글이다. 나름 관심있는 주제여서 어떻게든 끝을 보기는 했지만, 이런 내용으로 좀 더 쉽고 평이하게 풀어낸 책은 없을까? 친절이라는 개념과 의미에 대한 고민에 더하여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