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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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지목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고 주장하며 권력은 그것을 제도화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예술이 사람사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일부 해답이 될 수 있는 말인데, 동시에 어느시대이건 인민이 예술에 항상 요구해왔던 명제이기도 하다.  예술 역시 사람이 표현하는 방식이기에 예술 자체가 어떤 일관된 주장을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명제하에서 예술은 꼭 그래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예술은 자체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도 있고 작가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사람과 세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 민감함이 필요하다.  세상을 이야기하는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 이 부분에서는 공통분모가 필요하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말할 것, 즉 진실을 이야기하고 직시하는 것이다.  진실을 바라봄으로서 형성되는 공감과 흐름, 그것이 사람들의 인식과 주장일 것이다.  미술분야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 그것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방법일 것이다.

 

  저자는 진실을 그리는 것이 자체로 미적인 매력을 발산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표현력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본 그것 그대로 그린 그림은 실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오토 딕스의 전쟁제단화라던지,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적 정체성이 담긴 그림들, 다니엘 살라사르의 천사가 함께하고자 하는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의 작품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며 끝까지 자본과 상술에 타협하려 하지 않았던 고흐까지..  그들은 보이는 것 그대로를 그렸을 뿐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 가치를 존중받고 있다.  

 

  보이는 것 그대로의 진실이 아름다움이 되고 지극히 인간적인 비판력을 지니게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실은 언제나 이야기거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긍정이든 비판이든 진실과 현실은 분명 마찰하며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야기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을 직시하기를 거부한 현실에의 안주때문은 아닐까?  사실 지금의 세상은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현실속에서 의미없는 소리만 난무할 뿐..  그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술을 바라보는 소양이나 경험의 문제뿐만 아니라 예민한 부분을 집어내는 예술은 없거나 탄압받으며, 음악은 값싼 사랑타령이나 하면서 벗고 보여주기의 난장판이 되었고,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난해하기만 하다.  저자가 마지막에 실린 부록에서 누군가에게 한 말, '예술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묻지 말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를 물어보라'는 말, 그것은 사람들이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갖추어지기를 바라며, 진실과 현실의 갈등에서 언제나 현실에의 안주가 강요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지 않았을까?  진실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한, 언제나 직시당하지 못하는 사생아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공허하고 의미없는 이야기속에 둘러 묻혀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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