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찌에 의한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학살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상식이 되어 있다.  물론 그 상식이 이제는 진부해서 그다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으로 전 세계인의 의식속에 인간의 존엄과 교훈의 차원에서 더욱 각인되고 기억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을 정도로 망각과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망각과의 싸움과 상식으로의 각인은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각각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대표적으로 '쉰들러 리스트'가 있을 것이고, 음악에서는 Henryk Gorecki가 Symphony No. 3로 유대인 학살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미술에서는 재일조선인 서경식씨가 유태인 화가 Felix Nussbaum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아우슈비츠 생존자 쁘리모 레비와 그의 문학을 회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만화라는 장르에서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아버지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회고작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게다가 월트 디즈니가 심어준 쥐와 고양이라는 유머러스한 적대관계를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일방적 적대관계로 전환하여 묘사함으로서 더더욱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부록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천사, 해설등은 작품 자체의 분위기와는 달리 너무 호들갑스럽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유태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나 나찌의 악랄함을 여기서 이야기하고싶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깊고 세밀히 표현한 이야기들은 굳이 내가 반복하지 않아도 이미 많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지 이 작품이 가지는 두가지 축, 생존자인 아버지의 이야기와 아버지와 작가인 아들과의 갈등, 그 중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 주목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쟁과 일방적 억압과 공포가 만든 하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대물림이 되어 고통이 되어야만 하는 트라우마, 작가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다른 집 아버지들이 날마다 한밤중 잠을 자다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자기애가 강한 나머지 자신의 것에 과도하게 집착을 하고 자기 외에는 다른 가족들마저 믿지 못해 생기는 갈등은 다름 아닌,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의 본능이 불러 일으킨 정신적 트라우마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역사적으로 변방의 위치에서 한반도와 왜구의 시달림과 최근에는 전체 도민의 10분의 일이 학살당한 4.3을 겪은 내가 있는 곳 제주를 떠올렸다.  제주 현지민들에 대한 외지인들의 부담감, 불편함.  거의 모든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의심과 텃세를 보이는 이들..  그것은 단지 바람많고 척박한 땅에서 힘겹기만 한 자연환경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인위적인, 그리고 강압에 의해 당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 등등에서 참전하고 돌아온 미국이나 한국의 병사들이 정신적으로 겪는 트라우마는 자세히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얼마전 심리치료를 하시는 분께 들은 기억도 있다.  그것은 국가라는 일종의 제국주의 파시즘이라는 폭력에 의한 상해라 이해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에게는 해외파병의 댓가로 주어지는 좀 더 많은 액수의 월급말고는 어느 누구도 그런 상해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여전히 계속되는 또다른 모습의 제국주의 파시즘과 이들에 의해 조장되는 이념적 갈등의 폭력이다. 

 

   아쉬운 것은 이 작품에서도 저자는 그런 트라우마를 단지 개인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지쳐버린 상황에서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아버지 개인의 문제로만 묘사된다.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시기의 미국사회를 살아왔기에 그랬던 것일까?  그것이 아직도 지속되는 파시즘이 가져다 준 폭력에 의한 후유증이라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기회가 된다면 내가 저자에게 한번쯤 문제제기를 해 보고 싶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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