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다른 이들에게 비친 이란의 모습이 단편적이라는 생각에 진정한 자신의 나라, 이란의 모습을 이야기해주고자 이 만화를 그렸다 하였다.  그녀가 보여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이란은 비록 그녀의 어린시절 자신의 성장과 결부된 이란의 역사이자 사회상이지만, 그 사회가 어떠한 사회이고 어떠한 역사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가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만화이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저자 그녀는 이란의 가부장과 근본주의자들의 탄압에 반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느끼고 실현시킬 수 있었던 일종의 행운아였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어릴적 기억을 되살려본다.  나에게 저자처럼 외국에 나가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거나, 집이 부유하여 비교적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지는 않았다.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권력의 불의에 반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없었음은 많이 아쉽다.  만화속의 저자처럼, 부모님이나 친척들의 깨어있는 생각들이,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교류와 만남속에서 비판적이고 진보한 생각을 키울 수 있었는가?  돌이켜보면 부모님들이나 친척들은 하루하루를 먹고사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었으며, 사회적 교류와 만남속에는 비판적 정신은 철저히 거세된, 체제에 순응적이고 막 피어나는 천민자본주의의 현혹에 저마다 빠져드는 과정이었으며,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접할 수 없이 철저하게 순응적인 공부기계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굳이 비유하자면 차도르를 쓴 펑크소녀가 자유를 갈망하는 해외의 대중음악에 빠져 자신을 표현하고 생각을 넓히고 있을 때, 같은 공간에서 천국문을 열 수 있다는 구리열쇠를 목에 걸고 전쟁의 최전선에서 숭고한 순교를 천명으로 싸우는 소년병의 신세와도 같은 것이었다.  

 

  흑백의 판화와도 같은 그림체는 명암이 단순하고 선이 굵어 얼핏 간단해보이지만, 모든 것을 단순화하면서도 그 속에서 맹백한 강조와 분명한 표현을 이끌어내거나 표정의 섬세함을 그려내는 것은 언뜻 신기해보이기까지 하다.  전체적인 그림체는 김은성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의 스타일이 다르긴 한데 세밀한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내지만 풍부한 감정을 표현해내는 소복이 만화역시 떠올랐다.  만화라는 문화적 표현방식은 재미있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풍부하게 만든다.  작가가 자신의 어릴적 삶을 통해 이란의 진정한 모습을 표현할 방법으로 채택한 만화라는 방식, 어쩌면 페르세폴리스는 소설로 쓰여졌다면 여느 평범한 경험담이 되어 사장되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만큼 내용과 표현방식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명작이 되어버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저자에게 어릴적부터 성장과 함께 키워온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저자에게 일말의 부러움과 대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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