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어느 응급실 레지던트의 삐딱한 생존 설명서
곽경훈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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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트 시절, 나에게도 ‘악당’은 존재했다.  국립병원이라 직원들은 거의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그 중에서 의료기사들이 나에겐 악당이었다.  그들은 응급수술을 앞둔 환자의 필수혈액검사 항목을 두고, ‘마취과의 승인지가 없으면 해 주지 않겠다.’며 의학적 월권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응급실에 콜받고 내려온 내과 레지던트는 의식없이 실려 온 환자의 포터블 엑스레이를 요청했는데, ‘지금은 운용시간이 아니다.’라는 기사의 답변에 분개하여 들고있던 혈액팩을 바닥에 내팽겨치기도 했다.  위암 수술 후 3일이 된 병동환자가 갑자기 심한 복통이 생겨 응급으로 CT를 요청하는 전화를 했더니, 전화기 너머 기사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를 윽박질렀다.  새벽 매 시간마다 ABGA 결과를 확인해야 했던 중환자실 환자의 혈액을 직접 채취해서 검사실까지 들고 뛰어가면, 당직기사는 십여 분을 기다려야 부스스하게 잠에서 깬 모습으로 마지못해 검사기를 돌려주곤 했다.  년차가 어느 정도 올랐을 때의 나는 그런 일들이 너무 부당하고 화가 나서, 때마침 구축된 원내 전산시스템의 게시판에 장문의 항의문을 종종 올리곤 했었다.  덕분에 나는 기사들의 표적이 되었고, 학과 과장님과 함께 병원장 면담을 두 번 불려갔었다.


  곽경훈 선생님이 지원했던 당시의 응급의학과는 설립초기였는데, 본문에서 나온 대로 굴욕으로 점철된 고난의 시기였다.  우리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응급실 스텦으로 지정된 전문의는 일반외과 출신이었는데, 아침 출근과 오전 퇴근 시간에 응급실 내부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때 외에는 거의 응급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개인적 용무가 있을 때에만 어쩌다 응급실 스테이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병원의 모든 과는 그래서 응급의학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해당과가 응급콜을 받으면, 협진과 각 과 역량으로 환자를 해결하곤 했다.  그 사이에서 처음으로 선발된 응급의학과 전공의 역시 굴욕과 치욕의 시간을 보냈다.  응급의학과 스텦이 자기과 전공의를 챙기거나 가르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전공의 사이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자존심을 누르고 굴욕을 참아가며 콜받고 응급실에 온 각 과 전공의들에게 물어물어 눈치껏 응급처치를 배워나갔다.  나에게도 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아 있다.  토요일 낮 퇴근을 하려는데,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전화해서 ‘정말 죄송한데 다리 열상환자가 근육까지 찢어져 있어서, 근육 좀 봉합해 줄 수 있겠냐.’요청해 왔었다.  복잡다단한 마음을 가지고 응급실에 내려가, 전화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와 함께 근육을 봉합했었다.  그렇게 버티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끝까지 수련을 완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후 두어 달을 보이는가 싶더니 그는 어느날 수련을 포기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권위 뒤에 숨은 무능을 쉽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시기였다.  재빠른 자본과 학문의 발전 사이에서 과거의 영화만 남아 화석으로 변해가는 병원에는, 의욕을 가지고 제대로 된 수련을 받으려는 전공의들이 많지 않았다.  윗년차 전공의는 의국 회진 때마다 환자들을 수련대상 정도로 바라보고 실제 그런 눈빛을 쏘아대어서, 뒤따르는 내가 환자들을 다독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미 기피과가 되어버린 나의 외과의 현실은 이처럼 심각했고, 나는 묵묵히 버텨나가면서 가끔 되먹지 못하거나 괴팍하게 주변을 뒤집는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수련 이후의 의사로서의 생존에 얼마간의 집착이 있었고, 그래서 과 업무 외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여러 술기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곽경훈 선생님의 병원은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추인다.  책을 접하는 사람이 정말 주의할 부분이다.  전공의 생활을 경험한 입장에서 절대 없는 이야기를 꾸미거나, 불가능한 인물들을 가공해 내지는 않았다.  공감할 만큼, 나 역시 그런 인물들을 전공의 시절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고마운 동료들과 스텦들도 많았다.  병동 수간호사님을 비롯해서, 내가 스스로 복부 CT를 판독할 수 있게 때마다 가르쳐주신 영상의학과 스텦 선생님, 그리고 내가 내시경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 때 스스럼없이 내시경을 가르쳐주신 내과와 외과 스텦 선생님들이 계셨다.  수술과 논문에 있어 길을 만들어주시며 직접 해보라 지도해주신 스텦 선생님은 내가 수료조건을 충족하고 전문의가 되기까지 절대적으로 도움을 주셨었다.  화석이 되어가는 병원이었지만, 내가 속한 외과를 거쳐 회복되어 퇴원하고, 고맙고 감사하다는 환자들의 인사는 수없이 받았다.  국립병원인 만큼 이름없는 노숙자들이 수없이 실려들어왔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그들을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문농양이 터지고 엉덩이가 다 헐어 구더기가 들끓는 노숙자의 신체에 장갑을 끼고 스스럼없이 손을 넣어 괴사한 조직들을 제거해 나갔다.  병원은 본문의 부정성보다 더 많은 긍정성이 규모있는 시스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산되고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리고, 10년도 넘은 과거의 모습을 지금에 이어 여전히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엔,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그 안에서의 생존만 감안하더라도 병원은 변해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당시 어설픈 싸움꾼이긴 했지만, 고단했던 내 기억 속 전공의 시절은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한 중요하고도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초창기 응급의학과 전공의로서 곽경훈 선생님의 투쟁과 생존기를 존중한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나도 이 독후감의 시작을 ‘곽경훈식’의 어투로 나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동시에 조심스럽다.  에필로그에서 ‘이미 10년 전의 경험이고, 반드시 이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언급했으나, 책에서 그려지는 병원이라는 공간 전체가 한꺼번에 암울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의학분야의 경험담이 생산되는 영역이 응급의학과나 정신과 그리고 일부 외과영역에 국한되는 상황이 흥미와 자극때문은 아닐까 생각되어 조금 답답하다.  의학분야에서 생산되는 재밌는 읽을거리는 어떻게 확대될 수 있을까 라는 작은 고민을 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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