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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를 읽는 시간
이택광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평점 :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이 현실의 삶과 동일하다고 믿고,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할 때도 정치인의 이미지를 보고 선택한다. 자신의 실제 삶이 어떠하든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의 자신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으며, 파편화된 이미지와 찰나의 느낌이 진실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그 이미지는 신기루와 같아서 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고, 그 이미지를 한꺼풀만 벗겨보면 이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의미도 주지 못하는 거짓과 화려한 겉치레에 불과할 때가 많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활동했던 작가로, 그녀가 살았던 세상은 아직 여성 작가가 활발하게 활동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한 시대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가지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녀만의 생각을 아주 많은 노트에 남겨두었다. 그녀의 일기는 그녀가 남긴 많은 작품(에세이, 소설)을 쓰기 위한 습작 노트였고,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작가의 사상노트였다.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을 읽다 보면 그녀가 시대를 앞서간 얼마나 훌륭한 작가였으며, 이제 영문학사를 논하고, 페미니즘을 논할 때 그녀의 작품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게 된다.
인스타그램 속의 사진으로, 그리고 화려한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한 사람들은 오래 그 이미지와 명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진실된 글과 깊은 사유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살아서는 엄청난 유명세, 수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은 적이 없었지만, 공식적으로 출간된 그녀의 작품 뿐만 아니라 일기와 같은 그녀의 사적인 기록들까지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며 그런 연구가 지속될 수록 그녀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문학사적 가치와 무게가 오히려 더해져가고 있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불꽃같은 존재가 아니라, 은은하게 멀리까지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별빛처럼 인간 지성의 저변을 넓히고, 여성의 삶에 힘을 실어주는 놀라운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임을 그녀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일기는 작품화하지 못한 '잡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작품으로 담아내지 못한 덜 정제된 재료도 아니다. 오히려 울프의 일기는 소설과 도등한 지위를 가진 독자적 장르다. 소설가 울프를 가능하게 만든 삶의 언어가 바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일기에서 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을 실험했다. 에세이가 현상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의 일기는 형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기술하고 있지만, 그 기술은 현실의 전개다. 이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울프의 관찰이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여러 작품들을 한꼭지 한꼭지 따로 떼어서 그 작품을 분석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글을 분석한 책이다. 하나의 챕터가 소논문의 요약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문학을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글이 쓰여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궁금했다면 이 책을 통해서 그녀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진짜 의미있는 것이 무엇이고, 진실된 글이 갖고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마음 속 깊이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세상에서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항상 깊이 고민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일 지라도 또박 또박 한자 한자 적어가며 용감하게 세상과 마주했던 그녀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