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간의 비밀
이원구 지음 / 화남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보듯이 G.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과의 중첩적 이미지를 피해갈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에는 충동적이며 모험적인 특성을 부여하고,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에는 명민하고 은둔적인 성격을 부여했던 소설적 장치가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이 작품은 사실적인 르포르타주 식의 소설로 역사성과 객관성에 기대고 있으며 봉수, 봉기, 봉훈, 봉찬, 봉철로 부친을 비롯한 숙부들의 이름에 인물들이 가지게 될 특성을 암시하고 있다.

소설을 관통하며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등장하는 배경은 산.

동학혁명군이 전투를 벌이고 처형당한 곳이며 인민군에서 빨치산이 되어 죽어간 곳도 다름 아닌 산이었다. 높은 이상을 가진 삶에 맞아떨어지는 운명적 이름이다. 열사로 일찍 생을 마감한 봉기숙부, 의용군 군관으로 월북한 봉훈숙부, 학도병으로 선산에 묻혀있는 봉찬숙부, 그리고 정의감이 투철한 봉철 대전숙부의 삶은 봉우리(峰)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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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님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 본가로 내려간 신혁은 그간 아버님과 소원하게 지냈던 것이 내심 미안하다. 이십대의 나이에 사십대의 얼굴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고뇌가 많았던 탓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지니신 아픈 삶의 내력 탓인지 그들의 관계는 늘 데면데면했다.

신혁의 부친은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해방과 6,25때 두 동생이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어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았다. 열여섯 살에 부친을 여의고 졸지에 가장이 되어 논 몇 마지기를 받고 친척에게 양자로 팔려가 품을 댄 대가로 지금의 선산을 물려받는다.

 

고향 와리는 전북 삼례 읍내에서 십여 리 쯤 떨어진 농촌마을.

100여 호 정도로 제법 큰 부락으로 주로 회안대군파인 전주이씨와 전주유씨의 집성촌으로 한 집 건너 일가친척이었다. 그 곳은 대동단결하여 반민족적이고 비민주적인 것들에 대항했던 공동체, 즉 소비에트로 불리는 정의감이 투철한 마을이었다. 그 마을의 중심에 신혁의 부친과 증조부, 일가친척들이 있다. 그러나, 신혁은 집안에 우환이 늘 겹치고 편안하지 않은 것이 마음 쓰였다.

더구나 그즈음 선산문제, 고향의 사회주의,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까지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증조부가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닐까 추리하게 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그 후예들 70%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는 속설은 가족들로 하여금 역사를 은폐시키게 한 것이 아닐까. 사회주의운동 출신의 독립 운동가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명예회복을 못하고 연좌제에 묶여 그 가족들까지 힘들게 살고 있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탐구정신은 동학농민전쟁의 근거지가 되었던 삼례, 전주, 영광지방의 역사와 인물에 가 닿으며 해방공간의 잔혹한 역사에 눈뜨게 한다.

 

유럽 열강들이 한창 약소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어가던 때, 동학혁명군을 진압할 힘이 없던 정부는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텐진조약을 빌미로 일본은 야심을 가지고 조선에 입항했다. 일본은 청나라를 이기고 조선에의 노골적인 침탈의지를 드러내며 조선 정부의 묵인 아래 동학농민혁명군을 섬멸하고 차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간다. 일본장교들의 지휘를 받으면서 조선 군인들이 미국에서 수입한 신식무기로 동학군을 잡아 죽였던 것이다.

 

일제는 1908년부터 토지 소유권제도와 등기제도를 세워 조선 농토와 삼림을 40% 가까이 차지하고 토지조사사업으로 세금을 증가시킬 수 있었고, 중산층을 몰락시켜서 농촌사회를 대지주와 소작농으로 재편했다. 과실나무 심는 것을 식목이라고 하듯이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식민지로 삼아 암탉처럼 쌀을 만드는 도구로 본 것이라는 청년 영두의 말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해방이후, 정의로운 세상이 될 줄 알았으나 숨을 죽이던 친일파는 특유의 동물감각으로 반공주의자로 돌변해 또다시 민초 위에 군림하기 시작한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 모냥 조선 조정은 또 왜놈들을 불러들여 동학농민혁명군을 다 잡아 죽였고 해방이 되면서 미국 놈들헌티 또 깡다구 있는 사람들 다 죽고, 그래저래 우리처럼 허수하비 같은 사람들만 살아남았어.“

 

전남 영광 출신의 문근송의 눈을 통하여 본 당시 조선은 유럽을 본뜬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물이고, 특혜를 받는 일본 독점자본주의가 얼마나 조선 민중들을 철저히 착취하는가를 보게 한다. 진고개의 왜인마을과 우뚝 솟은 백화점, 지역 자본을 다 빨아들이는 백화점에서 신식 문물과 자본주의를 누리는 신여성들은 식민백성의 또 다른 그늘을 보게 한다. 그리고 청계천이나 동대문 성벽 밑에 즐비한 움막집들은 1920년대 지주와 자본가 밑에서 소작농과 노동자, 도시 빈민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었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결국 아버지의 새로운 유언장으로 선산문제는 마무리되었고 동학농민혁명 유족으로 인정도 받고

신혁을 괴롭히던 문제들은 해결되었다. 6개월밖에 못 살 거라던 신혁의 부친은 담낭암 선고를 받은 지 5년 만에 삶을 마감한다. 오진이었을지도 모르고 삶에 대한 아버지의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신혁은 아버지 삶의 궤적이 궁금하였으나 아버지는 ‘내가 농판인게’ 라는 말씀 외에는 과거를 안고 침묵한 채 돌아가신다. 신혁의 가슴속에 아버지는 권위와 권력을 거부한 영원한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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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간의 비밀>은 전북지방의 수난사이며, 동학농민 혁명군 후손의 가족사이며, 인류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구도적 탐구소설이지만, 넓게는 처참하게 희생된 30여만 명의 동학농민혁명군, 연좌제와 궁핍으로 비루한 생을 걸머진 그 후손들의 100여 년에 걸친 고난과 항쟁,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그 명예를 회복한 이야기이다.

                                                                             - 작가의 말

 

작가는 실제 외가와 친가가 겪은 역사적인 수난을 추적하면서 이 작업에 5년 가까이 매진하였다한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외세의 간섭으로 분단과 내전을 겪은 뒤에도 분열을 조장하는 추악한 권력자들, 민중을 노예 취급하는 일부 자본가들, 사대주의적인 어용학자들, 그들에게 기생하는 탐욕적이고 파괴적인 인물들도 구체적으로 복원하여 그들의 지배욕과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고발하여 참다운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하였다한다.

 

농민군과 양반 사대부, 벼슬아치가 한 덩어리가 되어 일제와 싸웠다면 조선이 과연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갔을까. 양반 사대부 지배층들은 왜놈들보다 동학농민군들을 더 미워하였다. 그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은 몇 백 년이나 내려온 신분제도를 허물면서 평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라는 망할망정 자기 집안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저자는 소리높여 비판하고 있다.

 

“먹물도 아닌 우리아버지가 무슨 투철한 사회주의자였겠냐, 그냥 시대의 흙탕물에 휩쓸려 간 거지. 우익들의 보복이 무서워 수십 년간을 숨어 산 거여. 그게 자식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것지. 나원,”

 

한웅숙부의 한탄은 민족을 와해시키려던 일본인들의 술수에 걸려 찢기고 서로 할퀴어야했던 슬픈 민족사의 고백이다. 서로를 밀고하고 미워하고 믿지 못하는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졌던 것이다. 한 가문의 백 년간의 비밀은 가슴 깊이 새겨진 문신처럼 우리가 안고 살아가야할 흉터가 되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폭동과 반란이 있었다. 역사는 그것의 지루한 재생이 아닌가. 이념을 위해 숱하게 스러져간 청춘들, 억압과 착취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했고 그것을 이루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라 믿고 자신의 몸을 산화시킨 그 청춘들은 우리들이 밟고 있는 땅의 일부가 되어 꽃을 피우고 곡식을 내고 있다.

 

책 읽기를 마치니 역사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았던 동학운동이 어느 새 내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 듯 옆에 와있다. 옛날은 가고 없지만 아스라이 떠오르는 유년의 불행한 추억들로 가득찬 이산가족의 아픔이 내 슬픔인 양 눈에 밟힌다.

그들이 가진 이념은 형제에게도 총부리를 겨눌만큼 강하고 숭고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당시로써는 알 수 없었던 전두엽의 미완성이라는 뇌의 미숙함때문에 일어난 집단행동이었을까.

한 사람이 느낀 두려움과 정의감이 무리 전체에 전염되어 그들은 조국해방이라는 목표를 향해 비상하여 날아갔다. 돌아오지 못할 지라도.

 

희생의 피 위에서 우리가 딛고 누리고 있는 이 자유, 자유라는 말이 너무 넘쳐 누구나 자유라는 말을 들이대며 다른 사람의 권리마저 침해하여 그 의미가 훼손된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어떤 가치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피로 얼룩이 졌다고 할 수밖에 없는 한 가문의 백년의 비밀을 읽으며 나는 역사의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하는가. 저자의 말처럼 인류의 삶이 주동의 세력과 반동의 세력간의 싸움이라면 세상을 바꿀 힘은 이들 사이에서 자식처럼 탄생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답은 너무 분명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신성하게 행사하는 것, 그것이 출발이겠다. 선거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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