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 옮겨 적기 -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 달을쏘다 시선 8
강주 지음 / 달을쏘다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흰 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을 알고부터 매일 꿈을

꾸었네. 흰 개가 흰 개를 물고 돌아오네. 꿈속에서 흰

개는 한 마리였다가 떼를 이루었네. 오직 흰 개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 나는 있고 나는 보이지 않았네.

흰 개를 뭉쳐 던지는 손이 있고 흰 개가 핥는 손이 있

네. 흰 개는 소복소복 쌓이기도 했네. 흰 개를 부르

는 방법은 말 할 수 없네. 말이 아니라 몸이었으므로

(....)

흰 개는 울려 퍼졌네. 흰 개를

쓰다듬네. 흰 개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흰 개

를 흰 개로 옮겨 적네. 흰 개로 나를 지우네. 흰 개. 흰

개.

                                        - <흰 개 옮겨적기> 중

개는 어디까지 될 수 있을까. 시 속의 개는 목줄이 없는 것 같고 눈에서 몸으로 꿈으로 종소리로 종이로 계속 변신한다. 우리는 묻는다. 어떻게 그것이 되었으며 왜 그것이 되었는가.

시인은 답변한다. 자, 잘 보세요. 그것은 그것으로 존재하며 결국 그것 때문에 그것으로써 사라지는 거죠.

괜찮을 걸까. 개의 윤리학으로 볼 때 개를 그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이 시를 읽고 세 가지가 떠올랐다. .

1. 안톤 체호프의 <개를 끌고 다니는 여자> - 개의 표정이 줄로 연결된 사람의 표정을 대신한다.

                                                 표정은 얼굴의 표현이면서 얼굴의 고요를 가리고 방해한다.

2.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 - 얼굴을 가릴 때 얼굴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3. 장자의 호접몽 - 이것은 개가 꾸는 개의 꿈(?)인가, 사람이 꾸는 개꿈인가

.

  흰 개가 있다. 떼로 변했다가 다시 한 마리이다. 시인은 심한 난시를 앓는가, 몽상 중인가.

그것과 상관없이 흰 개는 있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있다. 늘 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경험으로 흰 개는 있다. 나눠졌다가 합쳐지면서 다시 여러 개로. 떠올린 게 아니고 떠올랐다. 생각한 게 아니고 생각났다.

 한 사람으로부터 촉발된 흰 개가 모든 걸 뒤덮어서 흰 개로 살다가 흰 개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흰개를 옮겨 적는다는 것은 잘 옮겨적을 수 없는 일에 대한 증명이다.

결국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어조는 말을 잘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삭제하겠다는 것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안다는 것이라고. 이해했냐고. 우리가 이해했다는 말을 기어이 듣겠다는 표정으로,

아니 이해하지 못한 게 이해한 것이라는 질문과 답을 동시에 듣는다.

하얗게 변한 혀를 감추고 짙은 어둠 속에서만 짖는 흰 개의 표정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흰 개라는 확신도 지우면서.

하지만 사라짐이 완전한 붕괴일 리 없다고 쓰면서.

시인은 권한다.

이 거 한 잔 드시겠어요? 이게 얼마나 신 지. 앗, 뜨겁죠. 퉷, 쓰죠. 힛, 그런데 달콤하죠.

거봐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니까요. 어머, 제가 미리 말 안 했나요?

좌회전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기, 숨 참기, 급브레이크 밟기 같은 돌변하기.

너무 가까우면 시가 성립되지 않고

너무 멀면 무의미가 되는 현실에서.....

말을 통하지 않고는 그 어느 것에도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종이는 떨고 흰 색은 막막하다.

시인은 떨며 막막하다. 신기함으로만 끝나지 않는 숱한 이미지들과 싸운다.

새로운 악기를 만들 것인가. 새 연주법을 고안할 것인가.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이 비행기 엔진소리로 지워질 때.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며 진통제를 삼킨다.                                       -<새·꽃잎·눈> 중

세계의 진동으로 잠들지 못하는 시인의 몸에 진동은 진통으로 오고

모든 소리와 소란과 소동의 마일리지가 시인의 몸에 시로 적립되는 것은 아닐까.

한밤에 한 편을 읽고 아침에 한 편을 읽는다.

밤에 읽는 시와 아침에 읽는 시의 속도와 어조가 현저하게 다르다. 아침에 읽은 시를 한밤에

한밤에 읽은 시를 아침에 읽는다. 계속 다르다.

강주 시인은 미학교실의 순수멤버가 아닐까.

한 창작기금 수혜를 받을 때의 심사평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동의한다. 시 속의 사물과 화자들이 화면 속 또 하나의 액자 속에서 다른 층위로 일렁인다.

하나의 시가 다른 시에 어깨를 기대고 다리를 휘감고 손을 붙들면서 지탱으로써, 겹침으로써,

위험을 감수한 채 서로의 배경이 되며 대칭으로 비대칭으로 재생되고 있다.

흰 개는 잘 옮겨졌을까.

종이를 깊게 파서 심었는지, 종이를 접어서 이층집을 지어주었는지, 종이로 싸서 이동을 시켰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의 결과로 검정개의 출현할 수도 있고, 인간의 탈을 쓴 개가 출몰할 수도 있다.

스스로 마음을 차지하려면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부작용은 지나치게 몰입해서 생기므로

이제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기로 해요. 의미가 제거된 관점으로

-<G의 징후> 중

당신이 사라진 종이는 바다로 일렁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를 본다. 새는 언제나 손잡이로 있다.

-<수상한 손잡이> 중

종이의 주기는 달에 있는 걸요. 달빛을 낭비하며 아무도 모르게 달을 위험헤 빠뜨리는 것까지/

종이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다시 종이를 진행할까요?

-<다시< 종이>,> 중

바다에 대해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을 다 지우면 비로소 진정한 바다일 거라고 믿으며, 수평선을 향해 달리는 소녀가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 중

이제 알 것이다.

모든 세계가 종이 위의 세계임을. 구겨지고 펼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이 종이임을.

그래서 우리는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새를 접어서 밤이 오고, 밤이 와서

별을 접어야 한다고. 시인이 하려는 일은 종이를 알기 위해 종이에 대해 아는 것을 다 지우고

진정한 종이와 대면하기라는 것을.

접고 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종이로 부르려 한다는 것을.             

흰개들이 잘 달리는 종이 위의 숲, 시인아, 그곳의 매혹 위

겨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눈 앞에 느닷없는 작약이기를...

사람을 가장 깨끗하게 하는 비밀은 죽음(패러디)이지만 그런 건 좀 모른 척 접어두고 조금 덜 깨끗한 채

용기를 내어 오늘을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은 이제 막 얼.굴.을. 시.작.한.다. 흰 천을 걷고서. 종이로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