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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따님이 직접 선택하신 660여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추려 엮은 에세이집입니다.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마다 주요 키워드가 되는 것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작가가 실제 느꼈던 감정이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 혹은 개인의 편견에 대한 성찰 등이 표현되어 있고 특히나 마지막 챕터엔 개인적인 삶 그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작가의 심정을 솔직히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35편의 작품 중 누구나 느꼈을법한 할머니의 베보자기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던 국민학교 시절 개성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 곳엔 할머니가 사셨고 손녀가 온다는 소식에 바리바리 먹을 것을 사들고 소녀를 기차역에서 기다렸던 할머니의 마음과는 달리 할머니를 부끄러워했던 작가는 '완서야'라고 부르는 할머니를 외면합니다. 당시 일제강점기 시절이라 어쩔 수 없이 개명된 이름으로 다시 할머니가 그녀를 부르자 다른 친구들도 일제히 작가를 쳐다봅니다. 작가는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음식을 싸들고 온 그 베보자기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베보자기에 음식을 싼다는 작가는 할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인게 아닌가 해서 감동스러웠습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여행가방 분실에 대한 것입니다.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경매를 통해 배출합니다. 타인의 여행가방을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보물상자를 열어본다는 심리를 잘 활용해 마켓팅으로 보였습니다. 작가는 본인도 잃어버렸다는 여행가방을 이야기를 하는데 개인의 사생활이 포함된 그 가방을 누군가가 봐다면 생각해도 부끄러워진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그 가방 속에 빨래를 하지 않은 옷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인상 깊었던 글은 마지막 챕터에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었습니다. 특히나 남편을 보내고 20년을 홀로 살았던 그녀가 가장 죽고 싶었을때는 바로 아들을 먼저 보낸 이후라고 합니다. 부모라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일이 바로 자식을 앞세우는 것일 겁입니다. 참척의 고통이라는 말도 있듯이 작가의 고통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져버릴려고 했지만 그 곳보다 물리적인 고통의 두려움이 앞섰다는 작가의 솔직함에 크게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남편이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어했던 장어구이집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되지 않아 방문했을때는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세월이 흘러 우연히 그 식당을 다시 갔을때는 잘 먹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작가는 여기서 시간은 어떻게 보면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최악의 상황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개인적으로도 최근에 너무나 맘에 와닿더라고요.

채송화를 좋아하고 스스로 옛날 사람이라고 칭하는 박완서 작가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받는 혜택을 스스로 받지 않습니다. 수입이 있는 스스로가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 에세이 집은 특수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겪었을만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에세이 집입니다. 다양한 주제를 통한 이 에세이집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