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팻 바커가 지은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생략된 내용들은 여성 노예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아킬레우스의 노예인 브리세이스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에선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브리세이스와 브리세이스를 탐하는 아가멤논으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부에선 이 갈등으로 인해 아킬레우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선봉을 맡지 않으려하자 그의 심복이자 연인과도 같은 파트로크로스가 참전해 사망하는 이야기, 그리고 3부에 이르면 이를 복수한 아킬레우스와 희생자인 헥토르의 시신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이야기 그리고 브리세이스의 탈출 이야기를 담고 있습ㄴ다.


이야기의 시작인 아킬레우스와 그의 진영이 브리세이스가 살고 있는 지역에 침략하면서 시작됩니다. 수많은 도륙이 벌어집니다. 브리세이스의 형제들 그리고 남편까지 그들의 손에 살해되고 브리세이스는 노예로서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가게 됩니다. 그녀는 아킬레우스의 잠자리 상대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킬레우스와 언제나 함께 하는 또 다른 남자 파트로크로스는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브리세이스와 나눕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진정히 사랑하는 사람은 파트로크로스로 묘사됩니다. 은밀하지만 이 둘은 누가 보더라도 이야기 속에서 연인으로 표현됩니다. 물론 직접적인 묘사는 아니지만 충분히 그러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죠. 이것 또한 브리세이스의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브리세이스의 캐릭터는 여성으로서 노예로서 그리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바라보는 것도 있지만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크로스의 관계를 관찰자 시점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3부에 이르면 이 둘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아킬레우스의 표현에 인해 드러나기도 합니다.




1부 막 바지에 아가멤논이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커지고 불길한 사건의 전조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탐하기 시작하면서 아킬레우스와 불편한 관계가 됩니다. 이는 엄청난 전투력과 리더쉽을 갖고 있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의 전투를 일부러 피하면서 결국 파트로클로스의 참전으로 이어집니다. 스파르타 쪽 몰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투구와 장비를 착용하고 전쟁에 나서지만 결국 헥토르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죠.

아킬레우스는 여기서 폭발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아가멤논의 목표대로 전투에 참여해 스파르타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헥토르도 죽이게 됩니다. 이야기의 스펙터클은 여기서 최고점을 찍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부에선 너무나 애처로운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것은 아들의 시신을 받기 위해 적진으로 가는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갑니다. 물론 헥토르를 죽여 복수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수의 대상인 아버지를 대면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을 다해 부탁합니다. 아킬레우스도 이 모습에 진심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몰래 헥토르의 시신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강한 에너지를 뿜기만 했던 아킬레우스의 캐릭터가 입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감성적이고 연민을 가지고 있는 남성으로서요.



3부에서도 브리세이스의 탈출기가 엄청난 긴장감을 가져다주지만 그녀가 스스로 아킬레우스에게 돌아오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고 시간은 빠르게 진행되어 아킬레우스는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이 새로운 리더가 되려고 합니다.

호메로스의 엄청난 서사시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추앙받는 <호메로스>의 스핀오프 격인 이 작품은 <호메로스>에서 단역으로 등장하는 브리세이스라는 캐릭터의 시선으로 아킬레우스와 주변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성, 그리고 노예로서의 시선에서 원작과는 아마도 전혀 다른 해석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한 남성의 상징인 아킬레우스가 벌이는 사랑(동성애)이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동성애 자체가 충격적이라기 보다는 3부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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