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정면
윤지이 지음 / 델피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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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윤지이 작가가 지은 <어둠의 정면>은 죽음에 대한 충동을 수시로 느끼는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민형기는 레지던트 시절 함께 했던 준희와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결혼 생활은 거의 반목의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준희는 레지던트 시절 자신의 수술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보며 트라우마를 안게 되었고 더 이상 의사라는 직업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어 그만 두게 됩니다. 결혼 이후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언젠가 떠날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공부하며 살아갑니다.



형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죽음에 대한 동경(?)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인데 그는 어릴때부터 자신을 쫓아다니는 소년을 항상 직면하게 됩니다. 그 소년은 야구부복과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 소년은 형기의 심리상태에 따라 등퇴장을 하고요. 형기는 죽음 대신 약물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내 준희가 절실한 그이지만 준희는 레코드점에서 일하는 마르코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며 그와의 여행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이를 말리는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싫습니다.

어느 날, 형기는 발치를 위해서 치과를 들리게 되는데 그 곳에 치과의사는 다름 아닌 자신의 환자였습니다. 일부러 서로 모른체 하는 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단순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남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그 사람은 암 선고를 받게 되는데 그 환자도 자살충동을 느꼈던 사람이었는데 암 선고를 받고 난 뒤에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이는 주인공 형기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칩니다.



전후세대 일본 문학을 보는 듯한 <어둠의 정면>은 허무주의라는 키워드와 동시에 현대인의 가장 큰 질병은 우울증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입니다. 삶에 대한 염세적인 입장은 아니고 단순히 인생에서 단 한 번 주어지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주인공의 동경을 직면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성장 배경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아내와의 관계를 통한 현재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형기는 아내의 마지막 선택 이후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됩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치과의사의 암 선고 이후 행동도 그의 차후 인생의 선택에서 큰 변화를 주고요. 어떻게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운명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운명이라는 것은 주변 환경에 의해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형기가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과의 만남이었는데요. 장인의 짧은 부탁 한 마디에 단순한 대답 이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형기의 현재 처지가 캐릭터와 너무 잘 부합해보였습니다. 형기 또한 자신과 '톰'이라는 연인을 두고 떠났던 기억이 현재 자신의 아내의 모습에 투영되어 더욱 더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자칫 엄청 염세적인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던 이 작품은 형기가 마지막으로 소년을 떠나보내는 장면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었고 언젠가 멋진 그리스 여행을 떠나길 독자로서 꼭 이야기 속에서나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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