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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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자기 인격과 자존심과 진심을 파괴하고 때로는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그러지 않나? 그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수있다. 그럼 죽을 수 있지. 죽는 게 뭐 이상해, 자살이라고달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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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토록 먼길을 걷고 오랜 시간을 헤매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연민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왜 내가 이해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해해버리면 끝장이라고 말이다. 그랬다. 끝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그날 그토록 많은 말들을, 평소의 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던 말들을 했다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돌보지 않은 우리의 침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너를 받아들일수 없어 죽게 했다면 나 역시 내가 사랑하지 않는 너의 어떤 부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시들게 놓아두기만 한 사람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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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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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나는 너에게 네가 왜 루카인지 묻지 않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그것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 역시 내가 왜 딸기인지는 묻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제 너와 함께가 아니고 여전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떤 일들은 그저 어쩔 수없고 어떤 일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저, 그럴 수 없다.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가 주는 믿음 외에 내가 다른 무언가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믿음을 지켰고 너를 잃었다. 그 사실이 가끔 나를 찌르지만 나는 대체로 평안하다. 그런데 루카, 너는 어떠니. 너는 그곳에서 평안하니. 루카였고 예성이였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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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그건 부르는 말.
아득하게 아득한 너를 부를 때
당신이라는 말.
어디에도 없는 너를 당신, 하고 부를 때
내가 부르는 것은 너인지, 나인지, 그인지
당신은 2인칭이 아니라는 것을 아흔아홉 해를 살고 알았다.
그건 거짓말. 나에게는 부를 당신이 없고 나는 아흔아홉 해를 살지도 않았으니.
계속 속고 싶어 속으로 부르는 말.
이미 오래전 20만년 전 너의 첫 출현과 동시에 사라진 말.
그러므로 당신, 당신은 무인칭,
당신이 없는 모든 곳에 당신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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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인칭의 자리
윤해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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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참을 수 없어져서. 참을 수 없어서. 바다를 보러 왔다. 바다를 본다, 파도가 온다, 파도가 온다. 이미 사라진 것.
나는 지나간 파도, 누군가의 마지막 바다 같은 것을 참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는데 참고 있다는 기분. 그래도 참을 수 없어 눈물 같은 것을 흘리고 싶었는데. 내내 나에게 등을 지고 바다에 앉아 있던 갈매가 가볍게 날았다.
바다가 보고 싶어, 이따금. 저 하늘 위에서. 하늘 밖으로. 훌쩍, 왜 우는 소리와 떠나는 소리는 같은지.

바다가 보고 싶은 건 외로운 거래. 엄마가 보고 싶은 건 삶이 힘든 거고. 학창 시절에 우리는 이런 목록을 만들곤 했다. 그때도 바다나 엄마가 늘 보고 싶었지만.
그리움도 나이를 먹는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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