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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최신 완역판)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ㅣ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10여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하여 쓴 그의 글에서 그 때의 감동을 다시 기대하며 책을 폈다. (내가 기억을 하고 있는 부분은 이 책의 극히 일부였다. 다시 읽는다기 보다는 새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4가지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다. 그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일확천금에 눈이 먼 살인자, 재능없는 예술가, 목숨을 걸고 국가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 철학자, 손녀같은 여자를 사랑한 위대한 예술가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해당 인물들은 자신도 모르게 벼락같은 기회, 영감을 얻어 영웅과 같은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너무나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밀려 목숨을 잃고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 속에서는 이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인간 운명의 질곡을 드러낸다. 신과 영웅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을 보여주는 고대 그리스 작품을 보는 느낌이 든다.
자 책을 다 읽은 후 기억에 남는 것은 키케로와 헨델이 이야기이다. 이 두 인물은 매우 빼어나서 위인전의 정석이 될만한 인물이다. 키케로는 공화정과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인물이다. 결국 로마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밀려 황제 체제로 가게 되고, 키케로는 사형을 당하게 된다. 키케로가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목숨이 아닌 국가의 안위와 신념을 선택한 것이다. 헨델의 이야기는 예술이 왜 위대한가를 알려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질병에서 불사조처럼 깨어나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작곡을 하고, 빚쟁이에게 쫓길지언정 돈은 탐하지 않았던 예술가. 헨델이 죽을 때까지 보여주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강인한 정신력이 보여주는 전율은 예술은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까지 한껏 격상시켜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역사책은 딱딱한 서술이 아니다. 소설을 보는 듯한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가 소설이 아닌 생생하게 구성한 역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1000년 전의 역사는 당연히 사료가 풍부할 수가 없다. 또한 근대의 역사라도 작자가 그 때 그 곳에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저자는 역사에는 빈틈이 많이며, 이를 역어내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라고 말한다. 비어있는 역사를 잘 얽어내려면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역사적 사료를 통해 해당 인물의 심리를 깊이있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객관성을 해치거나 특정한 목적으로 가지고 이용되지 않는 한 교육적이며 감동적인 훌륭한 사관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