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열린책들 세계문학 25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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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영화에 보면 돈이나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냉소적인 듯 따뜻한 듯,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캐릭터들이 있다. 자기 기준이 확고하고, 죽음을 비롯하여 어떤 외력에도 굴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을 굴복하고 말 유혹, 위협에 맞서 오로지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간다. 이 캐릭터들의 원조가 ‘기나긴 이별’의 주인공 필립 말로이다.

내 기억 속에서는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 스피겔이 떠오른다. 시니컬한 듯하며 따뜻하고, 돈이나 편안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움직인다. 끝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복수를 위해 죽은 듯싶다. 현실의 대부분의 사람은 돈, 편안한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때문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 만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이 이해가 될 듯 말 듯 했다. 그런 신비감이 만화와 주인공에 대한 매력을 더해줬다.

그의 시조격인 필립 말로는 20세기 전후 미국이라는 현실적인 배경에서 등장한다. 그는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위선적이고, 위험하고, 복잡한 도시를 경멸하면서도 즐긴다. 그의 직업 자체가 위험을 찾아가는 일이다. 범죄인, 경찰, 재벌들을 면전에서 조롱하고, 필요에 따라 협력하거나 어울리기도 한다. 부자나 권력자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저열한 사람들도 공평하게 조롱한다. 미인계, 돈, 안전 등 무엇으로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그의 눈에 우습게 보이는 미국이나 인간의 속성들은 현대에도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년 전 인물이라도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눈 앞의 이득을 돌을 보듯이 하고, 싫어한다고 피하지 않고, 강한 자에게도 굴복하지 않고 도리어 비웃는 모습에는 강철 주먹으로 내리쳐도 멀쩡한 영웅 같은 모습이 있다.

이 영웅은 좀 괴벽스러운데도 있다. 길에서 버림을 받는 술주정뱅이한테 연민과 친밀감을 느낀다. 이후 이 사람과 친해지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경찰, 공무원, 재벌, 의사, 불량배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필립 말로를 괴롭히고, 그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소설의 처음과 끝이 되는 이 괴벽스러운 우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서 여러번 등장하는 호모섹슈얼리티라고 한다.(작가는 극구 부인함) 가족을 꾸릴 생각도 없고, 가까이 지내는 특별한 사람도 없는 필립 말로의 괴상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은 필립 말로 시리즈의 연작이라고 한다. 그 중 시리즈를 거의 완성하는 중년 필립 말로가 나오는 책이라고 한다. 앞서의 시리즈가 성공을 했으므로 이 책이 나왔을 것이다. 앞에 책들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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