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은 미국의 신병을 의미하는 속어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 소개를 보면 아무 생각없이 미군에 지원한 젊은이, 트라우마와 마약으로 인생이 망가진 이야기로 짐작이 되었다. 짧은 제목,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의 소재에 이끌려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제일 강렬한 느낌이 든 부분은 은행을 턴 후 빠져나가려고 하는 제일 첫 챕터이다. ‘이 인생은 망했다’고 온 몸과 마음으로 외치는 주인공. 누구에게 원망을 돌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은 망했다고 말하며 이 책 특유의 ‘인생 망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의 삶은 순간의 기분, 필요에 의해서 이끌려 간다. 이런 부분은 ‘이방인’이나 ‘사람들은 말을 쏘았다’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주인공의 사고방식이 이 책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내가 묘사하는 능력이 없어 《릿허브》라는 곳의 호평을 빌리면, “일상과 전쟁, 중독, 우울의 공포가 나란히 존재하는 웃기고 고통스럽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 책의 소재는 이라크 파병 미군, 마약이다. 둘 다 한국 사회에서는 큰 공감과 관심을 끌 수는 없는 소재이다. 이라크 파병을 다녀온 군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가 문제가 되고, 마약 중독자가 훨씬 많은 미국에서는 사회의 고질병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관심 소설이 될 것 같다. 한국이 지나친 경쟁으로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미국의 사회 문제에 비해서는 순한 맛같다. 학업, 취업 경쟁은 언젠가는 끝이 있다. 힘든 경쟁을 거치고 나면 시간이 걸려도 자신이 갈 수 있는 자리는 있게 마련이고, 작든 크든 노력의 대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전후 외상 후 스트레스, 마약은 삶을 몸과 마음을 갉아 먹어 삶을 파괴하지 않는가.

주인공이 제대를 한 후반부는 아주 기가막히게 삶을 살아간다. 마약을 밥 먹듯이 한다. 약이 떨어지면 금단 증상으로 앓아눕는다. 주인공과 여자친구 에밀리는 밥은 안 먹어도 마약은 할 것 같다. 저렇게 날마다 마약을 해도 몸이 남아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마약마약마약... 마약 이야기만 나온다. 마약을 넘어 두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둘 사이에 다른 수 많은 이성이 끼어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이 은행강도를 하는 것은 생계 유지와 마약 구매도 이유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금단 증상에서 벗어나게 마약을 가져다 주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은행을 털며 사람은 죽여도, 자신을 배신한 마약상들은 이해하고 넘어가고 보복은 하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 범죄자인데도 높은 도덕성을 가진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그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사회나 운명의 희생양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로, 28세로 복역 중이라고 한다. 아직 젊은 나이이다. 그는 과연 마약을 떨쳐내고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떠올리며 리뷰를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