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 고전 목록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들 서사시를 읽어보았을 때 너무 길고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 형식으로 편집된 본을 보는 것은 뭔가 원작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서사시에 대한 사전 지식을 챙겨서 제대로 서사시를 즐겨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에 관한 라디오 방송을 집필한 것이라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문어체보다는 구어체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한 챕터가 가지고 있는 내용이 짧은 편인데, 라디오 방송에 적절한 길이만큼 잘려서 그런 것 같다. 책을 읽다보니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서사시같은 느낌이 든다. 서사시의 현대판 주석이 되는 현대판 서사시 말이다.

이 책의 앞 쪽 절반의 전반부는 서사시의 대략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중요한 부분을 짚어가며 함께 읽어간다. 두 서사시를 읽어본 사람은 중요한 대목마다 그 때 그 감명을 떠올리면서 읽을 수 있고, 서사시를 읽지 않은 사람은 언젠가 들어본 내용을 떠올리며 축약본처럼 읽을 수 있다. 일리아스보다 오디세이아 내용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뒤 쪽 전반부는 일반적으로 서사시를 다루는 방송이나 책에서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서사시에 대한 문화적인 맥락이나, 현대 사회에 대한 투사가 나온다. 스토리를 쭉 따라가면서 읽을 때 놓치게 되는 부분, 알고 나면 새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일리아스에는 수 많은 영웅이 나온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심지어 여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도 작은 약점 하나를 감추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면 무심코 지나쳤던 장군도 하나하나 살아나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 동화판으로 읽으며 그냥 대사 몇 줄로 지나쳐 가는 인물에 대한 묘사와 캐릭터 부여를 보며 ‘이 사람에 대한 내용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생각했던 부분이 스쳐 지나간다.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와 달리 천국이 없는 대신, 이름을 남기는 것에 가치를 크게 두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근엄한 유일신이 아니라,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인간의 운명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여러 신들을 약소국의 운명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강대국으로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 책은 무더운 여름에 짬짬이 호메로스를 즐길 수 있는 현대판 서사시이다. 호메로스가 남겨준 유산을 현대의 언어와 생각으로 재미있게 전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