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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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싸움이 주가 되는 영화를 보면 수 많은 조연들이 죽어나간다. 그들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고, 주인공이나 그의 친구들의 부상이나 죽음만 엄청난 비극으로 보인다. 조연들도 가족과 삶이 있는데 말이다.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가 수 많은 조연들을 죽이려는 멸절사태를 막아서며 이들도 처자식이 다 있을 것인데 그 들은 어찌 살라고 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 하느냐라고 할 때 어찌나 반갑던지.

그날의 비밀이란 책은 이런 주인공 위주의 서술을 벗어난 책이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중요한 순간, 여러 나라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등장 인물들을 흑백 단편 영화처럼 보여준다. 이 등장인물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람들만 다루지 않는다. 공무원, 정신병원의 예술가, 미국의 유대인 소품 대여점 주인 등 그 역사 속을 살다간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들 각자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역사의 일부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통해 시대의 비극, 시대의 희극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법이 그 당시의 분위기를 좀 더 다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실화 다큐멘터리나 예술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책이다.

한 광인이 쏘아올린 전쟁의 불꽃은 우리의 생각처럼 단순한 모습이 아니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군수품은 군사적 목적의 실용성, 심미성으로 아직까지 연구되고 있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의 전차는 구르다가 단체로 멈춰서는 촌극을 보여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벌이는 촌극은 더욱 가관이다. 총통을 환영한다고 기다리고, 깃발을 흔들며 신나게 소리치고 있다. 이들에게 국경을 열어준 오스트리아의 정치인과 유럽의 정치인들은 다가오는 암울한 미래를 못 본척하며 우유부단하고, 쩔쩔매고, 기가 죽고, 소극적이고,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다. 되려 이를 예견한 일반인들은 자조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독일의 군사 작전을 지지하고 돈을 대 준 기업들은 대대손손 현재까지 번성하는 중이다.

이 책을 통해 역사의 미래형 서술법을 본 것 같다. 기존의 역사는 권력과 힘의 역사였다. 모종의 목적을 가진 주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다른 사람들을 체스판의 말로 삼아 죽이고 죽는 것을 위주로 서술되는 역사였다. ‘그날의 비밀은 그 추악함을 점잖으며 적나라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죽이고 죽는 그 촌극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시작되며, 얼마나 비극적으로 끝나는지 말이다. 권력과 힘보다 인간이 중심된 역사가 가지는 서술이 가지는 힘을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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