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번역가로 먹고살기 - 미드, 영화를 번역하는 먹고살기 시리즈
최시영 지음 / 바른번역(왓북)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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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7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의 영상물에 푹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꿈꿔보지 않았을까 싶은 직업이다. 영상번역가! 그런 영상번역가로 '먹고 사는 방법'이라니 책 제목이 매력적이었다. 미드 영어공부법이 유행하고 외국 영화나 토크쇼 등등 다양한 영상물에 대한 국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한국 연예인들이 전세계로 진출하면서 한국 영상물에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달아주기 원하는 전세계 수요도 장난아니다. 유튜브에서 한국 예능이나 아이돌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찾아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아마 다 알 것이다. 무슨 영상을 들어가던 꼭! 외국인이 'eng sub please~:)'라고 단 댓글이 성가실 정도로 널려있다는 사실을! 거기다가 영상번역가는 아침에 지옥같은 지하철에 낑겨서 출근하고 이미 해가 다 저물어버린 밤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퇴근하는 삶을 살 필요없다.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설명하듯이 아침형인간은 아침이 있는 삶을, 올빼미형인간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출근은 여유롭게 몸을 일으켜서 내 집 안에 있는 책상에 앉으면 끝!

     그렇지만 뭐든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따라오기 마련일 것이다. 누군가는 프리랜서의 자유로운 삶이란 장점 속에서 불안정한 수입을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는 대신에 마감할 때까지 눈 벌게지도록 밤새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답변을 위해 이 책이 나왔나보다. 실제로 영상번역가로 오래 활동해온 저자는 책 속에서 마냥 영상번역가를 찬양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진솔하게 영상번역가의 삶과 매력에 대해 설명한다. 카더라 통신을 배제하면서 스스로의 경험과 다른 영상번역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를 낱낱이 드러낸다. 읽다보면 마냥 부러워만 했던 삶 속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단순히 그런 내용만을 담아내지는 않고 영상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도 가득 담아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번역가는 영어실력(혹은 여타 외국어)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번역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이라고 모두 수능 국어 백 점 받은 건 아니듯이 번역가도 마찬가지이다. 어학실력은 그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혹은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언어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전을 달달 외우고 있다고 해서 말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말을 잘해야 한다. 비문을 만들지 않고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말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다. 이는 본인이 번역하고자 하는 양 쪽 언어에 모두 통달한 상태가 아니라면 힘든 일이다.

    저자는 또한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철학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분야를 맡게 된다면? 의학이나 사극 분야의 전문적인 어휘와 상황들을 맞닥뜨린다면? 이런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더라도 각 나라의 문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나라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미묘한 상황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누이트 족은 눈(雪)을 나타내는 단어가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어에 없는 단어를 한국어로, 외국에 없는 단어를 외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는 번역가의 손에 달려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들에 일일히 그 문화에 대해서 긴 줄글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영상번역가가 엄연한 전문직업으로 나오게 되고 사람들의 수준과 지식이 높아졌다. 영상번역가는 더 이상 골방 안에서만 작업하는 익명의 작업가가 아니다. 영화 크레딧에 당당히 이름 석 자가 뜨고 오역에 대한 시청자들의 문의에 대해 성실하게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몇몇 번역가에 대한 이름과 평판이 널리 알려져 있고 오역을 일삼으며 피드백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는 번역가에 대해서는 보이콧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나는 기자가 쓴 책을 좋아한다. 기자는 다양한 수준의 배경지식을 가진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 분초를 앞다투어 빠르게 글을 써야하는 상황도 있고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면서 땀 흘리며 쓰는 상황도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기사를 써야한다. 그래서 기자가 쓴 책을 보면 항상 필요한 배경지식들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정리되어 있으며 문장도 간결하고 빠르게 읽어내려도 이해하기가 쉽다. 대중을 위한 글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그렇게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영상번역가도 다양한 수준의 대중을 대상으로 간결하면서도 충실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어려운 글을 읽기 힘든 사람들,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지겨운 사람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결코 알맹이가 가볍지는 않다. 내가 일일히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책 속에 알찬 내용이 가득 들어있으니 영상번역가에 대해 흥미가 있는 사람은 한 번 읽어보기를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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