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라도 괜찮아
이케다 기요히코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무늘보라도 괜찮아] 제목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귀여운 나무늘보가

느리고 답답해도,
서툴고 부족해도,
다 - 괜찮아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주는 듯했다.  모 음료 광고에서도 느릿느릿한 나무늘보가 주인공이었다.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쉼표, 여유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일까?

저자 이케다 기요히코는 생물학자이자 평론가, 에세이스트이다.
해박한 지식, 통쾌하고 유머러스한 어투, 냉철하고 솔직한 문체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학자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경험치가 깊숙히 묻어있구나 싶었다.
예시로 든 다양한 생물들, 각 생태의 설명 등등.

나무늘보는 평균 시속 900미터로 이동한다고 한다.
시속 900미터가 가늠되지 않았다.
저자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니,
초속으로 계산하면 1초에 25센티미터를 움직인다고 한다.
낮 동안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나뭇가지에 붙어 지낸다고 한다.
하루 8그램 정도의 잎사귀만 먹고 20시간 이상 잠을 잔다.
일주일에 한 번 느릿느릿 나무에서 내려와 나무뿌리에 배설을 하고,
예의바르게 흙으로 덮은 뒤, 다시 느릿느릿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나무늘보 VS 현대인
굳이 비교를 하긴 좀 우습긴 하지만, 현대인들은 너무나 조급하게, 바삐 살아간다.

 저자는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편이 좋지 아니한가 이야기한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장시간의 노동이 인간 본래의 성질과는
아주 동떨어진 행동 양식이라 설명하는 저자.
우리가 오래전 그때처럼
느긋한 생활로 돌아간다면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 인간은 원래 게으르게 설정되었다
part 2 당신에게 무한한 재능이 있다는 거짓말
part 3 인생에 살아갈 의미 같은 건 없다
part 4 당신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니다

어랏! 저자의 이야기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나 조차도 본문을 읽어가기 전에 먼저 목차를 보고서는,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인류의 삶부터 거슬러올라간다.
수렵채집인이었을 때의 인간은 서로의 부족에게 파멸적인 타격을 주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

최소한의 식량을 위해 몸을 움직였고, 여분의 노동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간은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부를 창출했고,

 그 부산물이 권력이고 노예, 전정인 것이다.
단순한 삶에 대한 동경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저자는 40세가 되기 전에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겪었고, 그 경험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그때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느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P 59)



나도 20대 초중반에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험했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사고로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으며,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때 든 생각이 저자와 비슷했다. 사람의 목숨은 알 수 없는 것.
유한한 생명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달려가게 되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최빈국 중 에티오피아로 두렵지만 해외봉사를 떠났던 것이다.

대학 재학 시절 우연한 기회로 코이카 해외봉사단원 제도를 알게되었고,

 패치아담스 영화를 보면서 봉사하는 삶, 치유의 손길이 나도 될 수 있다고 용기를 내었다.

 해외의료봉사는 이타적 행동이긴 하지만, 나 스스로를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많은 죽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가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은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기도 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chapter. 21
인생에 살아갈 의미 따위는 없다

이 챕터를 만나서는 평소 나의 가치관와 충돌함을 느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무슨 의미 따위는 전혀 없다는 표현에서 거부감, 혹은 저항감이 일었다.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늙어 죽는다.
생물이란 모두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는 어떻게든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싶어 한다.
나는 인생에서 지나치게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어쩌면 그리 행복한 삶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대부분은 기쁨보다 슬픔의 시간이 많은 법인데, 슬플 때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우울증에 빠질 게 당연하다. 큰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는

사람보다 분명이 마음이 편할 거라는 얘기다. (P 162)


물론 하나하나, 세세한 모든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는 일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의미를 찾아가면서, 그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인간은 사고의 확장이 있지 않을까?

'의미'에만 메여있지 말자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인생에 살아갈 의미 따위는 없다'라는 표현은 지양되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몇 개월전에 어느 강의에서 삶과 죽음의 단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과거 우리네 삶에서 생과 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장례를 집에서 치뤘고, 사람들과 함께 꽃상여를 메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묘지에 이장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장례식을 하고, 화장을 하고
죽음이 일상과 분리되었다.
저자도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 한다. 요즈음은 대다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는 시대가 되어

 가족이 죽음을 함께 하는 일조차 못하게 되었다고.
현대의 죽음은 은폐되었다는 표현이 참 적절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인간은 원래 게으른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돈 욕심없이도, 돈을 쓰지 않아도 즐거운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되길
희망한다. 인생은 계산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말한다.
나무늘보처럼 느긋하게, 자신의 삶에 자족하면서,
살아 있음 그 자체로 행복함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다면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노년의 지혜가 번뜩이는 [나무늘보라도 괜찮아] 이 책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회인들, 현대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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