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이미령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긴 연휴를 마무리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제목에 꽤 길죠?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이미령 작가님의 서재를 엿보았네요.

작가는 과연 어떤 책을 읽을까요?

 

이미령 작가님은 불교를 전공하셨네요.

팔만대장경을 번역하고 불교의 세계를 강의와 글로써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수년째 지식까페 라디오 북클럽>에서 하루에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외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분이예요.

 

 

프롤로그 - 작고 여린 것들을 위한 책 읽기

 

첫 시작의 글에서 작가님의 세상을 향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작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조근 조근 이야기하는 작가님을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왠지 상상이 가는 분입니다.

'세상은 얼마나 작고 여린 것들로 가득 차 있는가!'

 

책이란 이렇게 작고 여린 것들의 아우성임을 알게 되면서,

그 아우성이 바로 내 안의 웅얼거림이었고, 세상을 향해 내가 뱉고 싶던 소리였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고 여린 것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사이 경청하는 그것만으로도 저들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을 위로하는 행위입니다.

작고 여린 것이 더 작고 여린 것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

그 사이에 책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 그리고 작가님이 권하는 책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34권의 책이 소개되어있습니다.

34권의 책 중에 나랑 작가님의 교집합이 있길 희망해보았죠.

그러나...

딱 두 권이네요. <어린 왕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는 책이 있지만 아직 읽지 못했죠.

저의 편식적인 독서를 바꿔보고자 하는 요즘 딱인 책을 만났습니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느닷없이 찾아온 슬픔과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다룬 이야기.

 

세상에는 슬픔이 한가득입니다. 그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누가 더 슬픈지 경쟁이라도 하듯 슬픔의 절정을 향해 내달립니다. 상대도 슬프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내 슬픔의 레인에서 달리기에만 골몰합니다. 그러다 문득 옆을 돌아보고서 또 다른 슬픔의 주자를 발견할 때, 비로소 슬픔의 달리기는 끝이 납니다. "당신도 그랬구나!"하는 진한 파동이 느껴질 때 슬픔의 세상에는 빛이 비칩니다.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빵집처럼 말이지요. (P41)

 

 

 

저마다 자신의 십자가가 가장 무겁고 힘들다고 느끼죠.

사람마다 삶의 무게가 다르다는 걸 알지만, 타인의 것이 더 가볍고, 편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뉴스에선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누군가에겐 마지막이, 또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는데...

안타까운 사건 사고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갑작스레 닥친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

<페스트> 알베르 카뮈

 

카뮈의 <페스트>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을 때, 자기 책임도 아닌 일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에 말려들 때 펼쳐지는 사람들의 혼돈과 방황, 저마다의 극복 의지를 세밀하게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 안에서 매일 죽음의 공포와 몸부림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p98)

 

메르쓰로 인해 일상이 정지당하고 격리된 사람들을 둘러싼 반응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들이 갇히게 된 것은 저들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안전지대 안팎의 모두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죄인' 취급하는 기미를 보았을 때 아연질색했습니다. 사람의 어리석임과 이기심이 이 정도일 줄을 몰랐습니다.(P99)

   

 

사스, 메르쓰, 조류독감, 지카 바이러스 등등

각종 전염병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합니다. 국가간의 왕래가 점차 빈번해진 요즘은 전 세계적인 유행병들이 전파되는 속도도 빠르지요.

몇년 전 메르쓰 사태 때, 제대로 처리를 했었더라면 많은 인명 피해는 없었겠지요?

 

 

 

쪼그라든 세상에서 만난 운명의 지배자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읽고 나서 감히 리뷰를 써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에 한 권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조르바는 보통 사람들의 격과 틀을 넘어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유롭습니다. 너무 자유로워서 조르바는 자유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조르바를 말해보고 싶습니다. (P187)

 

우리는 어쩌면 평생 '무엇'에 대해 알아보느라고 한 번도 '무엇'인 적이 없었습니다. , 정말 그렇습니다. 불교신자는 붓다에 대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하느라 일생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건 조르바 스타일이 아닙니다. 조르바는 붓다로 살아버립니다. 붓다에 대해 알아보는 게 아니라 붓다로 사는 것이지요. 진리에 대해 알아보는 게 아니라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이지요.....

조르바는 이렇게 말합니다.(P191)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P192)

 

자꾸만 사람들이 쪼그라들어 갑니다. 사람들이 뭔가에 잔뜩 길들여지고 주눅이 들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게 보기 싫습니다. 남자답게 여자답게 맘껏 당당하게 속에 들어 있는 끼를 부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라고 탄식하지 말고 "내 운명을 데리고 간다"하며 호기를 부리는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p194)

 

 

 

매체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구입한 책이

내 방 한 켠에 잘 놓여져 있습니다. 읽지 못한 책이 한 가득이죠. 마키아밸리의 <군주론> 도 그대로 먼지만 쌓이고 있답니다.

이미령 작가님은 <그리스인 조르바> 이 책을 4-5번이나 읽으셨다고 합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와닿는 구절을 보았다고 하시네요.

저도 자유인 조르바를 얼른 만나야겠습니다.

 

고교 졸업 후 문학 서적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살아왔습니다.실용 도서를 주로 즐겨 읽었던 저였죠. 쉽고, 재미있게, 실용적인 책을 읽으면서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편식을 하면 영양소 결핍 증세를 보이듯이 저에게도 그런 영성 결핍 증세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실용 도서와 더불어 철학, 인문, 문학 도서를 조금씩 접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책들을 폭넓게 접하게 되니, 더 맛난 책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님은

이 책에 실린 원고는 <법보신문>에 연재한 글들이며, 프롤로그에 실은 글은 국방부에서 펴낸 <마음의 양식>에 담은 글을 다듬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매체에 다양한 형식으로 책을 소개하는 일을 즐겁게 하시는 분을 보며, 나의 리뷰에서도 사람들이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욕심일까요?

 

34권의 책들을 작가님의 따스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글에 배어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35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많은 작품들을 쉴세없이 접하게 되니,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책 읽기가 힘이 들면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제법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부는 요즘,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책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드시길 추천합니다.

 

 

 

 

 

샘터 http://post.naver.com/isamtoh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