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외수님의 그림 에세이.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보드라운 책 표지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서늘한 바람에 가을이 완연하다는 걸 느끼는 요즘. 

책이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외수 쓰고 정태련 그리다

그림을 그린 정태련님은 세밀화를 주로 그리셨다. 생태 관련 세밀화 작업.
다양한 소재, 색감, 색다른 표현기법.
미술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정태련님의 그림은 멋졌다.
단순히 멋지다는 한 마디로 설명하긴 죄송스럽다.

 

 

1장 적요는 공포

적요라는 표현이 낯설다.  평소하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
하지만 작가님은 타고난 글쟁이.
맛깔나는 표현을 찾아내고, 깊은 물속에서 팔딱거리는 생명의 단어를 건져올린다.

적요 : 적적하고 고요함.

날마다 잠에서 깨어나면 대낮에도 컴컴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다.

움막 안에는 아무도 없고 어둠과 함께 적요만이 나를 짓눌러 왔다.

어둠 속의 적요는 곧 공포였다. 다섯 살 때였다.

 ......

지금도 적요가 공포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또한 공포다. (p20)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여섯, 일곱살 때의 기억이다.  성탄절 밤이었다.
엄마는 성탄절 미사를 드리고, 성당 사람들에게 음식 봉사를 하셨다.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맛난 음식을 나누며 친교를 나누던 그 때.
신앙과 봉사를 중요시 여겼던 엄마.  설거지를 끝내고 가야 한다고 하시며
혼자서 집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왜그리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는지.
컴컴한 어둠 속을 헤치면서 집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끔 꿈에서 공포스런 장면으로 나타나곤 했다.
나에게 그 기억은 충격과 공포로 내 머릿속 깊숙한 곳에 새겨졌나보다 했었다.
시간이 꽤 흘러서 엄마가 나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밤에 무서웠을텐데, 엄마가 미안하다.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했어'라고 말씀을 하셨다.  왜그리 눈물이 왈칵나던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이 못내 미안하셨던 엄마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나의 마음 속 흉터에 빨간약을!
그 시절 엄마를 생각해보면 작은 아이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 옆에 있는 것이 미안해서 혼자라도 가서 빨리 자야지라고 했을텐데.
막내 딸의 내적 상처를 뒤늦게라도 살펴보고 보듬어주신 엄마께 감사했다.

 

 

공간도 입체고 시간도 입체다. 따라서 당연히 시간에도 옆구리가 있다. 거기 시간의 옆구리, 작은 골방 하나를 나는 알고 있다. 가끔 나는 그 골방으로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때는 시간도 공간도 정지한다. 그리고 모든 현실은 사라져 버린다. 내가 비정상인 것일까. (p34-35)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시간.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그곳에서의 창작 활동이라니 비현실적이지만
몰입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시간의 옆구리란 표현이 정겹다. 
다정한 엄마, 아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개구쟁이 아이처럼.
나에겐 명상, 글, 그림. 창조적 활동에 대한 동경이 있다.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면,
나의 적성 검사 결과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던 분야는 창조력, 언어력.
그 당시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물거리는 별빛의 끝자락을 잡고 싶은 심정이다.

 

 

 

 

" 항해보다 어렵고 전쟁보다 치열한 인생,

사랑 하나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랑
한 때, 그 사랑을 믿지 못했었다.
대가족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의 연애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한편으론 애정결핍증세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막둥이로 과도한 애정의 중심에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사랑을 받고자하는 속성이 강했다.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 친구 N양은 사랑에 온 목숨을 바쳤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을 했고,
치열하게 사랑을 했었기에 한이 없다고 나에게 말했다.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그녀를 보면서 부럽기도 했었다.
나에겐 나 자신을 내던질만한 사랑의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용기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였겠지싶다.
N양은 여전히 사랑을 믿으며,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녀를 보면서 역시...
한 해, 한 해
인생을 살아오면서 삶의 지혜를 간절히 원했던 때가 있다.
최근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며, [사랑]이란 단어를 집어내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유쾌하다.
조금씩 나도 영글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굶주림만큼 인간을 처절하고도 저급한 동물로 전락시키는 형벌이 있을까. 그러나 육식의 굶주림보다 훨씬 더 인간을 처절하고 저급한 동물로 전락시키는 것은 영혼의 굶주림이다. 참으로 무섭고 어이없는 실상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자각도 위기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p 164)

 


영혼의 굶주림. 영적 갈망,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나도 내 영혼의 굶주림을 몰랐었다.
어떠한 큰 사건이나 계기가 있을 때,  영적 갈망을 깨닫는다.
아무런 자각이나 위기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섭지만 현실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민감하게 자신과 세상을 관찰하고 표현한다.
똑같은 1이란 자극이 주어지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에겐 1이란 자극은 1 그대로 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1이란 자극은 5가 되기도, 10이 되기도 하다.

 

 

책은

사람을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고 깨닫게 만든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얕은 앎,

얕은 느낌, 얕은 깨달음에 머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조차 모르게 된다.

책은 우주로 연결된 통로다. (p186)


책 : 1.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
      2.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


나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서른이 넘어서야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았다.
참 부끄럽게도 고전 문학, 혹은 필독서라 불리는 명작은 읽지도 않았다.
얕은 지식으로 오랫동안 연명했다.
책보다는 TV 보기를 좋아했고,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책엔 진리가 있다는 말은 그저 그런 말이라 치부했었다.
베스트셀러로 소개된 책은 가끔씩 읽었다. 소설책도 읽고, 시집도 읽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 종류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술술 읽히는 쉬운 책을 좋아했다.
어렵게 개념을 풀어내는 책은 읽다가 접어두곤 했다.
[생존 독서]라는 말을 접했을 땐,  '뭐야? '했었지만...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손을 놓지 않는 이상, 절대 배신하지 않는 친구.
책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혼자 놀기 어색해하는 나에게 슬쩍 다가온 녀석이다.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책이 있어 즐겁다.

 

 

그림에세이인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은
이외수 작가님의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일상의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지혜로움이 번뜩인다.
그림과 글은 어떻게 구성했을까?

이외수, 정태련 두 분의 작업은 예전부터 하셨다던데...

 글에 맞는 그림을 고르는 것일까? 혹은 그림에 맞는 글을 찾는 것일까?
작가님은 정말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에서

 말하듯이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기도 한다.
나의 질문은 작가님에게 텔레파시로 전해지고 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 799번지]
올 가을엔 이 곳으로 한 번 떠나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