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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
이 책은 영국이 아프리카 지역을 본격적으로 침입해 오기 시작한 19세기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우무오피아 마을의 이야기다.
오콩코의 아버지 우노카는 게으르고 대충대충 사는 사람인 데다가 내일이라는 것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돈이라도 약간 생기면 야자주 한 통을 사서 이웃을 불러 흥청망청 놀았다. 그는 피리를 잘 불었고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추수가 끝난 다음 이삼 개월이 지나 마을 악사들이 화로 너머에 걸어 놨던 악기를 내릴 때였다.
우노카는 아들 오콩코에게 곳간을 물려주지 못했다. 오콩코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 우노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되었고, 평생을 실패와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고 곳간을 늘려갔으며 용감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불 같은 성격을 지녔고 공격적이었으며 권위적이었다.
마을의 촌장인 에제우두의 장례식에서 에제우두의 막내아들이 오콩코의 총에 맞아 죽는 우발적 사고가 발생한다. 부족 사람을 죽이는 것은 대지의 여신에 대한 범죄였고, 이를 저지른 사람은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마을의 전통에 의해 오콩코는 7년이나 마을을 떠나 살게 된다. 7년 후 오콩코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이미 예전의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 아니었다. 선교사들이 마을에 나타나 마을 사람들도 둘로 나뉘어 반목하는 관계가 되었고, 그의 큰아들은 선교사를 따라갔다. 오콩코는 집회를 방해하던 전령의 우두머리를 도끼로 내리쳐 죽이고 결국 자신도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한다. 평생 강해야 한다는 강박, 공격적인 그의 성격으로선 그것이 최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양의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많은 식민지국에서 경제적 약탈을 자행했고 문화와 전통을 짓밟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그 내용을 가늠하게 하는 제목이다. 그러나 작가 치누바 아체베는 식민지국 영국의 횡포와 억압의 과정에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오콩코라는 한 남자의 개인적 몰락을 통해 부족의 몰락과 전통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지만, 곳곳에 아프리카 부족의 장례 풍속, 결혼 풍속 등 그들의 전통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민담과 우화를 즐기며 자녀 교육에도 활용했던 그들의 여유와 전통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아체베는 그들의 전통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쌍둥이를 낳으면 숲에 내다 버렸고, 모든 마을과 부족에 '악령의 숲'이 있어 문둥병이나 마마 등 사악한 질병에 걸린 이들을 대지의 신의 저주라 여겨 이들을 마을에서 몰아냈다.
치누아 아체베는 나이지리아 동부의 이보족 마을에서 태어났고,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전통과, 선교사를 통해 유입된 서양 기독교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전통 사회의 붕괴는 분명 제국주의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그것에만 떠넘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피식민 경험이 있는 우리 또한 그렇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는 쉽다. 그러나 전통의 몰락, 기존 체제의 붕괴가 오로지 타자에 의해 결정 난다는 결론 또한 찜찜하기 그지없다. 체누아 아체베 또한 오콩코의 죽음을 제국주의의 탓으로만 돌렸다면 그의 죽음을 영웅화하는데 까지 나아갔을 것이다. 차누아 아체베가 첫 선교사로 임명된 스미스 씨에게 걸었던 기대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타협점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지나간 역사를 두고 '만약에'는 부질없는 짓이지만 수많은 역사에서 '만약에'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