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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굴 가이드
김미월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평점 :
원래 김미월의 소설을 좋아했기에 창작집이 나오자마자 구입했다.
<서울 동굴 가이드>에 수록된 9편의 소설들은
제각각의 장점과 매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웰메이드 단편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오래전에 죽은 단짝 친구의 납골당을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조그만 절에 머무르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하루 동안의 일을 담고 있다.
잘 웃는 18세 어린 스님, 괴팍한 주지 스님, 퉁명스러운 공양주 할머니..
나쁜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슬프지만 따뜻하고 아름답고 투명한 소설.
'가을 팬터마임'이라는 소설이 두 번째로 좋았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내 블로그의 사진과 글들, 메일박스의 메일들은 모두 어떻게 될까.."
이 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어떻게 될까?
우체통 속에 들어 있는 것이 편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매력적인 소설.
그 밖에도 '(주)해피데이'나 '너클'.. 등등 9편 모두 좋았다.
김미월의 소설은 문체 때문인지 읽을 때는 참 명랑 쾌활하게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내용이 그만큼 우울하고 슬프고 무겁다.
우울한 얘기를 명랑하게 하는 게 김미월의 장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김미월의 진짜 장점은 문장이 정확하다는 거다.
그녀의 문장에서는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비문 오문이 전혀 없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완벽하다.
소설이 술술 읽히니까 쓰는 것도 그냥 술술 썼을 거 같은데
가만 보면 단어 하나하나에 꼼꼼하게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오랜만에 괜찮은 소설집 하나 읽게 되어 기쁘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다 왜 이렇게 우울할까?
책에 실린 김미월 사진을 보면 장난기 가득한 눈에 얼굴도 귀염상이던데..
말못할 아픈 과거나 상처...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