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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떠올리자니 눈 앞의 소녀가 만질 수 있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죽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어서라도 옆에붙들어 두려 했다는 사실이, 그게 고작 십오 년 전이라는 사실이, 그 십오 년 전의 서울에는 소녀를 끔찍이도 그리워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소녀가 소중했던 만큼 소녀에게도 그들이 소중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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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반쯤 덮은 속눈썹이 물에 잠긴 나뭇잎이 그물맥처럼 섬세해 보였다. 선율은 그 뒤편에 웅크려 있을 금속제 뇌를, 거기에 담긴 마음을 생각했다. 2038년 12월의 서울에서 출발해 2057년의 서울에 도착한 마음을. 자신의 죽음을 알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전기로 만들어진 마음도 피와 살로 만들어진 마음만큼이나 복잡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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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이름보다는 시멘트 덩어리의 이름을 더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해가 뜨기도 전부처 물가로 가서 바다를 빤히 바라보곤 했다. 한때는 아파트였고 빌딩이었던 덩어리들이 새벽노을 속에서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결국엔 빛의 일부가 되어 버릴 때까지.
그런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언제나 걸음으로 끝났다. 그들은 그냥 걸었다. 앞으로, 앞으로. 물에 정수리가 잠기고서도 발밑에 공간이 남을 때까지 , 앞으로.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이 바다가 아니라 아스팔트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스럽게.
그건 병들거나 늙어서 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죽음을 두고. 죽은 게 아니라 서울로 내려갔을 뿐이라고. 강원도로 떠나고 판교로 가는 것처럼 더 좋은 삶을 찾아간 것이라고들 했다. 수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떠났으니까 소녀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안되는데.
우찬과의 내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 뒤편에서 이상한 덩어리가 뭉글거렸다. 생각이 되기에는 낱말이 부족하고 감정이 되기에는 방향이 없는, 그냥 느낌이었다. 느낌에 대한 느낌. 선율은 거기에 불안ㅇ니ㅏ 초조함 같은 이름을 붙여 보다가 그마두었었다고. 어무막 밖으로 한 발짝을 내디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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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 필요.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 선율은 세 음절을 빼고 더하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단번에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병원은 흔적으로만 보았지만 병에 걸리는게 어떤 일인지는 잘 알았다. 폐병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이모가 끝내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낫지도, 죽지도 못하고 숨만 붙여 놓은 채로 4년을 보냈다면 그저 살아있는것조차도 열심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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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아주머니가 수호의 이력에 놀라는 동안 수호는 아주머니의 이름에 놀랐다. 자신처럼 병원을 뺸질나게 들락거ㅣ는 사람을 몇 번 보았지만 한국에 그런 성씨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던 것이다. 서문의. 서, 문희도 아니고 서문,희. 수로는 그게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조금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직 모르는 게 세상에 많은 것 같아서. 병원에만 앉아 있을지라도 세상을 넓혀 갈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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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두 시간쯤 물밑을 돌아다니면서 목걸이를 찾아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꼭 발견한다는 부담을 가질 것도 없이,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지아가 물 밑에서 잃어버린 게 어떤 마음이라면 지아만을 위한 시간은 그 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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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는 입을 벌리고 거기에 놓여야 할 문장들을 떠올렸다. 있지, 나도 기분이 이상해. 여기에 앉아 있는 게 실수 같아. 내 실수라기보다는, 응, 엎질러진 물이 된 기분이야. 그런데 누굴 어떻게 원망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애초에 탓할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무슨 답을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러자 정말로 소리들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수호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음소거 명령어를 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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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을 얼버무린 선율은 수호의 곤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한없이 평범하면서도 다정한 감각이 훌쩍 다가왔다. 지금까지 오간 이야기를 하나로 뭉친 다음 낱말을 걸러 내면 따뜻한 온도만 남는게 아닐까. 그런 온기는 텅 비었는데도 전체를 담고 있어서, 기나긴 설득보다 더 많ㅇ느 걸 전해준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동안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게 몇 년간의 기억이 없어진다면?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휘청하게 할 만큼 좋지 않은 기억이라면 찾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그냥 없어진 기억의 자리에 새로운 좋은 기억을 채워 넣는 것이 좋을걸까에 대해. 소설 속 기계인간 수호는 자신의 몽에 저장되지 않는 기억을 찾기로 한다. 그리고 결국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처(이건 약간 반전이 있으니 밝히지는 않겠다) 와 마주한다. 그러나 수호는 배터리를 빼고 살아가기를 정지하는 대신, 새로만난 인연들과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아무리 내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린 기억이라도, 만일 기억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잊는 것 보다는 찾는 쪽의 선택을 하자고. 결국 지금의 나는 행복한 기억, 불행했던 기억, 좌절했던 기억, 때로는 평범하기만 흔한 기억들이 모두 뒤섞여서 만들어진 것일테니 . 결국 상처의 기억도 나를 만들어낸 하나의 조각일 테니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두 번째 들었던 생각은, 딸이 죽은 자리 딸의 기억을 그대로 저장하고 있는 로봇이 과연 자식이 떠난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을까? 에 대한 것이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고통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그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소중한 사람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로봇이라 할지라도 대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가 같다고 현재와 미래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다이브의 수호의 부모님처럼 엇나가는 로봇딸을 보며, 그 딸의 마음을 보듬는 대신 착한 딸의 의무를 강요하게 되는 것 처럼. 로봇은 그냥 로봇일 뿐 아닐까. 그냥 당장 자식을 잃은 슬픔을 잊는 대용품 정도가 될 뿐. 기억을 받아 로봇으로 만들어진 수호 역시 만들어진 딸 역할과 자신의 삶 사이에 방황을 하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비록 똑같은 기억을 담은 로봇이라 할지라도.
흥미로운 소재와, 기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싶다면, 소설 <다이브> 강력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