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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창비에서 진행하는 블라인드 테스트 당첨이 되어 <호수의 일> 가제본을 받았다. 지금이야 저자가 이현작가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 했을 때는 작가님도 밝혀지지 않은 채, 한장의 편지만 전해졌다. 이 책을 쓸 당시의 심경과 어떤 마음으로 <호수의 일>을 독자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가볍게 편지 내용을 옮겨 보자면....
그대에게
라고 불러봅다.
편지란 누군가를 부르며 쓰는 글인데, 나는 그대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러니 그대, 라고 내가 아는 가장 다정한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대도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모르신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나는 지금
어떤 이름일까요? 작가라는 것이 가장 쉬운 답이겠습니다마는,
지금 그대에게 나 역시 그대였으면 합니다.
아직 창밖이 캄캄한 새벽,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슬픈 호수에서
문장을 길어내던 그대, 하고요.
그러신다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그대에게는 얼마쯤 너그러워지는 법이니까요.
그대란 부르는 순간 어여뻐지는 이름이니까요.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쓴 것을 내보이는 일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호수의 일> 역시 그렇습니다. 이전보다 더 …라 써버리면
저의 정체를 누설하게 되는 걸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대 앞에서는 그런 법이지요. 그러니 이어 쓰겠습니다.
네. <호수의 일>은 이전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지금껏 늘 그렇게 느껴왔는지도 모르지만요.
사실 <호수의 일>은 손글씨로 쓴 이야기입니다. 지금껏 한번도 해본적 없는
방식이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펜을 들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라고요.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한참을 쓰다 손이 아파 더는 쓸 수 없어
고개를 들어보면 창이 환히 밝아 있었습니다.
한달쯤 날마다 그러고 나니 호정의 눈에 기슭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호정도, 은기도 그리고 저도 호수를 건너 여기에서 지금 또 손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처음부터 <호수의 일>은 그대에게 쓰는 편지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그대에게 쓰는 편이일른지도요.
캄캄한 새벽 홀로 호수를 건너고 있는 그대에게 어둠 저편의 그대게 그대에게
우리 사이의 호수는 꽤 넓어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긴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에게 서로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대. 거기 있어 주어서.
2022년 겨울, 저편 기슭에서
손글씨로 써진 편지를 읽고나니 이 책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터져버릴까 마음 깊숙하게 묻어둔 감정이 다시 스믈스믈 기어 나와서 나를 흔들어 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 할 수는 없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능숙하게 숨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닐까.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는 게 어른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느라 사춘기를 앓는 것일지도.
<호수의 일>의 주인공 호정은 어린시절 치유되지 못 한 기억이 있다. 사업 확장을 하느라 가족의 돈을 날려 버린 아빠 엄마는 결국 어린 그녀를 할머니 댁에 맡기고 만두집에 취직을 한다. 어린 효정은 할머니의 안타까운 시선과, 효정의 부모님이 돈을 잃는 바람에 미래를 포기해야 했던 삼촌과 고모의 눈초리를 그대로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숨기는 거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은 갖지 못 했던 화목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홉살 어린 동생을 보면서, 갖고 싶은 것은 척척 눈치 없이 사는 그래서 철이 없게 느껴지는 친구 나래도 모두 상처로 다가온다. 열등감이라는 이름의 상처.
그러나 효정은 익숙하게 감정을 숨긴다. 얼어붙은 호수처럼. 단단하게 흐르지 못하게. 그래서 효정은 눈물을 흘리지 못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은기. 말할 수 없는 아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그 흔한 공통점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을 은기에게 발견한 효정은 그에게 마음을 연다.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아픔에 대해 묻지 않는 배려.
얼어붙어 있던 효정의 호수는 천천히 녹아간다.
그러나 은기의 비밀이 학교에 밝혀지면서 그는 사라져 버리고, 이미 녹아버린 감정의 호수 때문에 효정은 방황한다.
녹아버린 감정에 호수에 숨이 막혀 발버둥 칠 무렵,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며 은기를 찾아가기로 용기를 낸다.
아픈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꽁꽁 얼려두고, 상처 받지 않은 척 멀쩡한 척 살아가는 건 정말 어른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 한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른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컨트롤 하고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슬럼프를 겪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들을 돌아 보면서 그렇게 얼려버린 감정들이 결국 어느 계기로 한꺼번에 녹아 버리면 그 감정에 침몰 될 수 있음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감정에 빠져 질식할 거 같은데도 무엇 때문에 내가 힘든지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힘들고 상처 받았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그대로 감정이라는 호수를 얼려 버렸더니 온갇 안 좋은 감정들이 뒤섞여 얼어 버려서 말이다.
<호수의 일>은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새해가 오는 것이 설렘이 아닌 근심으로 다가 온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주인공 효정이 얼어 붙은 마음을 녹여내며, 겪어내는 성장기를 보며 내 감정의 호수의 상태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의 결심 중에 더 많은 책을 읽고자 다짐을 했지만, 감히 <호수의 일>이 내 올해의 책 원픽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