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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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당신은 대한민국이 공정하다는 거대한 착각속에 살고 있다!"

 

기만과 응징, 통쾌한 희열이 뒤섞인 본격 사회 미스터리 소설.

 

검찰, 사법부, 정치권, 언론을 망라하고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무법의 공조 카르텔, 이 부패 세력가들이 기회가 재물을 편취하는 동안 사회는 뿌리부터 깇숙이 썩고있다. 이제 법의 이름으로도 처단하지 못한 악질들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도려내기 위해 집행관들이 나서야 할 때! 국정과 사법을 농단한 적패들이 한 명씩 살해될 때마다 온 국민이 환호하고 응원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2. 인상적인 문구& 작은참견

 

*

" 1948년 9월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이 제정된 때 입니다……. 이 버버은 일제에 적극 협렵한자, 친일 부역자등 반민족행위자르 처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1960년 11월은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공민권제한 법이 제정된 때입니다."

특히 이 법은 4,19가 발생하기 전, 공직자들의 범되 사실을 적용한 법률을 근거를 삼았다. 여기에는 직권 남용과 피의자의 가혹행위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경준이 말끝을 흐렸다.

"피의자들은 당시의 법률을 노창령씨에게 소급 적용시킨 겁니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법률에 의거해 형을 집행한다는 것이죠."

-> 이 책의 집행관들의 첫 번째 처단자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친일파 노창룡이다. 그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게 만들었음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게다가 그의 귀국목적은 자신의 명의로 된 땅을 소송으로 되찾고 묘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라를 팔아 먹은 주제에 그래도 죽은 후에는 그 나라에 묻히겠다는 의도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쉽게 친일파 자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에,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나 다른 옳은 행동을 한 인물들이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그 어떤 교육을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

허 선배가 찾아온지 한 달이 지나서야 그럴듯한 명분을 찾았다. 수천 만명 중에, 쓰게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수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정의를 이루지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꼭 몇 명중에 한 명이 되기로 했다. 허 선배의 말대로 분노를 꼭 가슴에 담아둘 필요가 없었다. 심장이 느끼는 대로,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면 됐다. 보내야 할 종자들을 보내고 나니 일말의 가책도 받지 않았다.

*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 주겠다는 건가?"

"좋을대로 생각해."

"이해가 안 가는군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나?"

유람선은 물살을 가르며 선착장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난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야. 불타는 정의감 때문도 아니지. 그런 건 나와는 맞지 않아."

"그럼 대체 이유가 뭐야?"

"굳이 말하자면…우리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분노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

-> '집행관들'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한 소설이다. 법을 이용해서 비리를 저지르고 법망을 빠져 나가는 이들을 꽤 큰 목소리로 비난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집행관들은 죽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소설을 읽을 때, 거부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집행관들의 복수방법은 '살인'인 것이다. 정의를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을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집행관'들의 집행 방식을 현실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소설의 대리만족의 개념으로 보는게 맞다는 결론을 냈다.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해서 비리를 저지르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어쩌다 처벌을 받더라도 잠시 감옥에 갔다가 금세 석방되는 사람들, 그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결국 돈과 권력의 힘을 느끼며 씁쓸함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그런 현실에 작가는 집행관들을 만들고 대신 처단하는 이야기를 쓰면서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법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터넷 방송을 종종 보는데 그곳에서는 농담을 하면서 '방방봐'라는 말을 쓴다. 방송은 방송으로 봐라. 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집행관을 볼 때 '소소봐' 라는 말을 적용시키기로 했다. 소설은 소설로 보고, 그리고 그 설정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은 말, 즉 문제의식에 집중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도 아쉬웠던 건, 첫 번째 처단자인 노창룡 이후에, 다른 처단자들은 죽음이 아닌 다른 방식의 보복을 가했다면 소설이 좀 더 다채롭고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건 그냥 독자로서의 아쉬움이다.

*

"그들을 저세상에 보내며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꿈이라는게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윤실장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작별을 암시하는 미소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허동식이 물었다.

"다 털고 떠나야지요. 감독님은요?"

"같은 생각입니다."

"봐둔 곳이라도 있습니까?"

허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팀의 책임자로서 팀원들이 위기에 닥칠 것을 대비해 여러 안전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것이 자신을 믿고 따라준 팀원들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다. 검찰의 손에 법의 신팜대에 서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혹시 송교수님을 만나거든……제 말 좀 전해 주십시오."

차가 화곡동 집 앞에 멈추었다. 윤실장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꿈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고 말입니다."

"……"

"이건 진심입니다."

-> 많은 이들이 꿈꾸는 사회는 법이 공정하게 적용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 나쁜 일을 하면 그에 맞게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그런 세상.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죄를 저지르고 법망을 피해가는 것을 그저 흘러가듯 보지 않고, 주목하는 것.

감히 친일파 자손들이 땅을 찾겠다고 나서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 범죄나 비리를 저지른 이력이 있으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통하는 사회, 그리고 역사와 정치의식을(정당이나 지역이나 그런 것들이 아닌) 명확하게 아이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이 집행관들이 꿈꾸었던 사회가 아닐까.

 

3. 짧은생각

 

앞에서도 말했지만 소설 속 집행관들의 집행 방식은 '살인'이다. 이 문제로 주인공도 집행관에 합류 할지 말지 고민을 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 또한 이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독자를 의식한 것인지 저자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한다.

"법이 공종하게 진행되었다면 범인들과 같은 과격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겠지요."

"……"

"그들을 과격하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검찰,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 법원, 그리고 이들 위에 군림하는 통치권자 책임져야 할 일 입니다."

물론 집행관들의 행동이 옳다고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집행관이 생겼듯, '집행관들'이라는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모두에게 공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왜 이런 소설이 나올 수 밖에 없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이고, 이 소설이 제시하는 문제점을 가볍게 넘기는 것 또한 경계해야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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