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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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는 분명 베스트셀러다. 최근 보니 한국에서도 대략 60쇄 가까이 팔린 모양이다.
베스트셀러, 특히 문학 분야에서의 베스트셀러를 읽고 만족한 적이 드물어서 선뜻 읽을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코엘료의 소설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많이 읽히는 듯하여 처음으로 그의 책을 손에 잡았다.
베스트셀러답게 잘 읽힌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학교보다 여행을 더 좋아하여 양치기가 된 안달루시아 지방의 산티아고는 어떤 아이가 자신을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데리고 가서 보물을 발견하게 한다는 꿈을 두 번 꾸게 되는데, 해몽을 하는 노파로부터 그 일이 그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얼마 후 그는 또 어떤 노인과 대화하게 되는데, 자신이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라고 주장하는 그 노인 역시 산티아고에게 피라미드로 가라고 한다.
이에 산티아고는 기르던 양들을 처분하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도착 즉시 자신의 전재산을 도둑맞은 후에 그는 그곳의 크리스털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하고, 그의 상업적 기량에 힘입어 몰락하던 가게는 번성한다. 1년 후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한 돈을 모은 산티아고는 귀향하고 싶은 마음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복귀의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있다는 생각에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이집트로 떠나는 대상에 합류할 때, 그는 연금술에 빠져 사막의 오아시스에 산다는 연금술사를 찾아가는 영국인을 만난다. 학교보다 여행을 선택한 산티아고와는 달리 책에만 빠져 사는 영국인은 인간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주는 만물의 정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티아고는 그의 책을 읽게 되지만, 그 속의 과학적 실험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상 행렬이 오아시스에 도착한다. 산티아고는 거기서 파티마라는 처녀를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파티마와 함께 있기 위해 보물을 포기할 생각을 한다. 사막에서 군대의 침입을 예감한 그는 이를 부족장들에게 말한 후, 연금술사를 만나게 된다. 군대는 실제로 오아시스를 침입했고, 산티아고의 경고 덕택에 격퇴된다. 산티아고는 부족장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그를 피라미드로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사막으로 떠난 두 사람은 얼마 후 사막의 군대에 붙잡히고, 산티아고는 이번에도 다시 돈을 다 빼앗긴다. 그리고 연금술사가 그들에게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여 목숨을 구한다. 뜻밖에도 산티아고는 실제로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과 해와 대화하고 천지만물을 만든 손에 기도한 끝에 스스로 바람이 된다. 그는 만물의 언어를 배운 것이었다.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직접 금을 만들어 건네준다. 그리고 오아시스로 되돌아간다.
이윽고 산티아고는 피라미드에 도착한다. 근처의 한 언덕에서 어떤 병사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는 보물이 자신의 고향에 묻혀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꿈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가 피라미드로 왔어야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는 고향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파티마에게로 가기로 한다.


줄거리를 적다 보니 좀 길어졌다.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면서 동화적인 분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인물들은 수많은 경구들을 읊조린다. 그 경구들의 내용을 대략 요약해보면 이런 것이 되겠다.


세상 만물에게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개별 존재의 목적이다. 이를 '자아의 신화'라 부른다.
세상에는 이 자아의 신화가 실현되도록 도와주는 표시들이 있으며, 개체들은 이렇게 세상이 개체들의 자아 실현을 도와주는 조건 하에 있으므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과 이 목표를 향한 굳은 의지를 가진 개체들은 누구나 저 '자아의 신화'를 쓸 수 있다.
현재 속에서 늘 인내하고 노력하다보면 조만간 기회가 온다. 그리고 이 기회에 나의 노력이 더해질 때 우리는 목표에 성큼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련과 시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시련이나 시험도 확신과 의지로 이겨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신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뭐 좀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가? 내가 보기엔 없다. 오히려 흔해빠진 이야기고, 빈약하고 일면적이며 그래서 오류가 많은 이야기다.
확신과 의지를 잃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한다, 이런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우선 확신과 의지를 잃지 말라는 이야기는 뭐 새롭지도 않고 나쁠 것도 없다. 그러려고 노력해야지.
그런데 '그러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주장은 대단히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실패는 모두 개인의 의지박약 탓이라는 말인가?
이런 인식이란 참으로 소박하고 어리숙하다.
삶은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도 좌우되며, 여기에 우연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사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삶과 운명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가로막는다.
'성공 = 준비(노력) + 기회'라는 공식도 틀릴 것이 없는, 이미 잘 알려진, 그래서 진부한 것이다.
게다가 도대체 이 책이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보물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물, 즉 금화와 보석과 황금이 가득 담긴 궤짝은 전혀 산티아고가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어린 피땀을 착취해간 어느 권력자나 부호의 것일 터.
그것을 혼자 차지하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성공'이다.
이는 마치 로또에 당첨되어 보겠다고 매주 로또 살 돈을 벌기 위해 무진 노력하거나
해저의 보물선을 찾는 데 전재산을 쏟아붓는, 그런 삶을 살아라는 것과 다름 없다.
물론 이 책에서의 보물이란 그저 성취의 상징일 뿐이며, 이를 오로지 물질이나 타인의 노동을 편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자구에 매달리는 일차원적 해석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코엘료는 참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농부와 세 아들에 대한 이솝우화보다 훨씬 못하다.
또 이 책은 과연 무엇이 성공인가, 인생의 목적은 성공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코엘료에게는 결국 보물로 상징되는 물질적 성공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이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기정사실인 것이다.
그런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많은 위안과 의지력을 제공해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지금, 그런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진부하고 편협한 관념과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충실한 인간관을 보여주는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이토록 크게 성공한 것이 전혀 놀랍지 않으며, 또한 아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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