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 상권 청소년을 위한 역사 교양 14
김계영 지음 / 두리미디어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은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다.

이 제목은 상당히 눈에 띈다.

첫 번째 이유는 '서양문학사'라는 거창한 표제에 있다. 과연 한 사람의 저자가 '서양문학사'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책 검색을 해보면 '서양문학사'라는 제목을 내건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그리고 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서양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도 그의 전문적 지식은 대개 한 나라의 한 작가, 좀 더 나아가면 한 시대 혹은 사조 정도에서 그친다. 좀 더 폭넓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전문분야에 몇 작가나 한두 시대를 더할 수도 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한 나라의 문학의 일부분을 제대로 아는 데 그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문학사>, <독일문학사>를 쓴다는 것만 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다. 이런 책을 쓰게 되면 상당부분은 자신이 읽지 못한 작품,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다른 참고문헌들의 기술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원고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양문학사>라니!

하지만 서양문학 전체의 흐름과 주요작가들, 시대들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은 독자들은 제법 있을 것이다. 전체에 대한 개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개별적인 작가와 시대에 접근하고 그들의 위상을 미리 파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느 한 작가, 한 시대만 독서를 제한하지는 않을 터, 이런 개괄은 모든 문학애호가에게 필수적인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불가능성과 필수성의 역설적인 결합으로 인해 '서양문학사'는 오랫동안 매우 허전한 구멍으로 남아있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서양문학사'라는 제목을 당당히 달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썼을까? 저자에 대한 정보를 보니 그는 디드로를 전공한 불문학자다. 여느 서양문학 전공자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서양문학사를 썼을까?

책을 읽어본 결과, 해답은 백과사전들에 있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여러 백과사전들에서 거의 옮겨온 것들이다. 시대사적 정리 부분에서는 일부 저자 자신의 원고가 사용되기도 한 듯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거의 백과사전에서 따온 것들이다. 그러니 딱히 저서라고 하기도 어렵다. 일종의 편집본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이 책은 '저서를 가장한 편집본'이라는 악명 높은 관행을 보여주는 나쁜 사례로 치부되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저자는 솔직히 이렇게 밝히고 있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필자가 서양 문학 전체를 통괄하는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나와 있는 많은 서양 문학 관력 책들과 문학사전, 백과사전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상권, 7쪽)

출처들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편집본적인 성격을 전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발언이다.

편집본이라도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대, 작가, 작품의 순서를 잡아 일목요연하게 배치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독자들은 여러 문학사전, 백과사전들을 이리 저리 뒤적거리면서 때로 방향감각을 상실하거나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사태를 이 책을 통해 피할 수 있고, 작심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서양문학사 전체를 큰 어려움 없이 머리 속에서 개괄할 수 있다. 편집 자체가 이미 상당한 공로인 셈이다. 이런 편리한 일은 이런 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책에는 내용과 연결되는 사진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만화 삽화들도 있다. 물론 이 삽화들은 너무나 평범한 상상력만을 보여주고 있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책이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

책 제목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부제다. 방금 말했듯 만화 삽화가 사용된 것, 모든 문장이 경어체로 작성된 것 등이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집필된 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실은 이 책을 놓고 청소년/성인 독자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전들에서 사용된 어휘들과 문장들이 거의 그대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내용이 평이한 편이다. 그러니 청소년이 읽어도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소년이 읽어도 무리가 없는 서양문학사' 정도가 올바른 제목이 될 듯 싶다. 그러나 누가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이겠는가?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읽지 못하고 띄엄띄엄 읽는 바람에 상하권을 모두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그래도 알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모르던 내용을 배우고, 시간적 순서를 새롭게 기억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서양문학작품을 즐겨 읽는 독자들 모두에게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고,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 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상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얻을 수 있는 책이기에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청소년이라고 해도 고등학생 정도는 돼야 볼 수 있을 듯 싶다. 두고두고 사전처럼 쓸 수도 있다.

저자라기보다는 편집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큰 작업을 무리 없이 해낸 김계영님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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