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무서운 속도로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장하준의 책을 읽어봐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풍문은 많이 들었고, 심지어 국방부가 그의 책을 금서로 정하는 바람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층 더 유명해졌다.

읽으면 득이 되리라는 짐작은 갔지만, 책 내용에 대한 안내들로 보건대 별 새로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같은 경제학의 문외한들조차 상식의 눈으로도 알 수 있는 이야기들로 보였다.

문제는 그가 제기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문제들이 발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의 주장들이 현실적으로 힘이 없는데 있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이 불티나듯 팔린다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건 이 사실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경우처럼, 이 책의 눈부신 판매속도 자체가 중요한 현상이었다. 독자들, 나아가 국민들이 이러한 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뭔가 좀 달라지려나.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경우와 비슷하게, 나는 이번에도 약간 늦게 이 현상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아주 잘 쓴 책이다. 어렵지도 않다. 술술 읽힌다. 그럼에도 아주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어느 한 문장도 허술하지 않다. 들어갈 이야기들이 다 들어갔고, 전개되어야 할 논리가 다 전개되었다. '그들'의 논리는 간략하지만 충실하게 요약되었고, 따라서'우리'의 공격은 소위'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빠져들지 않았다.

이 책에서 공격하는 수많은 논리들이 지금 이 나라를 지배하는 정치세력의 논리라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인한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국민들의 몸부림이 바로 이 위기를 초래한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을 통치자로 선택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무척 아이러니하다.

'작은 정부', '지식 경제', '기업 하기 좋은 나라'(기업에게 좋은 것은 나라에게도 좋다는 등식), 노동 유연성', '기회 균등', '트리클다운 정책'...

이 모든 것들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적 구호들이었고, 이 책은 이런 구호들이 얼마나 허술하고 비현실적이며 소수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있는지를 폭로한다. 그리고 그 폭로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평가했듯이"반박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장하준의 이 책이 이렇게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금융위기가 먼저 있어야 했다. 이 책이2007년쯤에 출판되었더라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철학만이 아니라 경제학도 미네르바의 부엉이라고 보아야 할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장하준의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변화는, 직감과 추측, 순수한 논리성에 머물렀던 많은 것들이 통계 등의 경험자료에 의해 확인되었다는 것과 더불여 여러 새로운 논거들을 얻은 데 있다. 이만하면 충분한 소득이다.

그래,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도 나처럼 이렇게 많은 것들을 확인했을 터이니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시장의 결과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할 때만이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333쪽)

촛불시위는 결국 이 책에서 비판하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이기도 했다.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통이 안 되는 불통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고안된 제도 중에서는 민주주의 정부가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상충된 요구들을 조정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우수한 장치이다."(338쪽)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작금의 한국현실에도 타당하려면"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정부가 여러 상충된 요구들을 조정하기는 커녕 스스로 어느 한 쪽 편인 경우도 있다"는 말을 덧붙여야 했을 것이다.

유일한 희망은 앞으로 있을 선거들에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 세력이 선출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약간이라도 그런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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