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제는 Schweigeminute이다. 이 말을 원뜻 그대로 옮긴 것이 <침묵의 시간>이라는 한국어 제목이지만, 대개는 '묵념 시간'을 의미한다. 실제로 슈텔라 선생님의 추모식에서는 묵념이 행해진다. 그러나 실은 이 책의 원제가 뜻하는 바는 소통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사태를 말한다. 153쪽을 보자:

"우리가 함께 발견하고 함께 나눈 우리만의 영역이었죠. 이 영역은 결코 남들에게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누설하는 순간 내게 전부였던 것이 단번에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침묵 속에 머물고 지켜져야 할지 모릅니다. 선생님, 그래서 나는 추모사를 맡지 않았습니다."

누설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것 - 그것은 왜 그럴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세상 속의 편견들과 저급한 관심들이다. 학생과 선생의 사랑. 바로 며칠 전 이런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중3과 30대의 여선생님이었던가, 그 두 사람의 육체관계를 포함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보도되자마자 세상은 오랜 만에 먹잇감을 찾은 야수처럼 그 이야기를 물어뜯었다. 하긴 20년이 넘는 나이의 차이라면 한 편이 미성년자가 아니라도 그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 편이 13살이라니! 사태는 분명해보였다. 누구도 13살 소년이 선생님에 대해 느꼈을 감정의 종류에 대해, 그리고 선생님이 그 제자에게 느꼈던 감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관심은 오로지 두 사람 사이의 육체관계에만 집중되었고, 반응은 경악이었다. 내밀한 감정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위 원조교제와 조금도 다름 없는 취급을 받았다.

이 책의 주인공 크리스티안과 슈텔라의 나이 차이는 위의 사건보다 훨씬 적다. 크리스티안은 18세였고, 슈텔라는 여전히 여학생으로 보이는 모습이니 그보다 아마 5년정도 연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선생과 제자 사이의 추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크리스티안의 입장에서는 그들로부터 전혀 인정받고 싶지 않은 세인들 앞에서 공연히 자신과 슈텔라를 옹호하고 진실을 바로잡아야 하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침묵의 시간'은 오랫 동안 지속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그는 추모사를 하지 않았다.

'추문'이라는 시선을 거두고 보면,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첫사랑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 소년이 몇 년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여기서는 선생과 제자이지만 귀족과 평민, 부자와 빈자 등 여러 다른 변주들이 있다) 차이 때문이 사랑의 미래는 밝지 않다. 어려운 사랑을 이어가던 중, 한 사람이 사고로 생명을 잃고 만다. 남은 사람은 망자를 추모하며 슬픔에 잠긴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골격이다.

80줄을 넘어선 독일의 대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사랑 이야기를,특히 성적인 사랑 이야기를 소설에서 쓰지 않기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80줄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사랑 이야기를, 그것도 침대에서의 사랑까지 포함하는 사랑 이야기를 썼다. 작품은 발표된지 2주만에 <슈피겔> 베스트셀러 리스트 2위에 올랐다. 렌츠의 고정독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독자들까지 이 작품을 사서 읽은 것이다.

80이 넘은 노작가가 아마도 60년대쯤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쓴 이 이야기가 왜 2008년의 독일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린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이 책이, 이 책에서의 사랑이 어딘가 혹독한 현대로부터 벗어나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이 반가우리만치 전통적인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바다와 섬과 갈매기와 방파제, 화물선 등으로 이루어지는 해변 소도시의 풍경. 방학이면 그냥 해변에서 놀아도 좋은 느림의 시간. 그 속에서 슈텔라는 스코틀랜드 대표가 그림에서 그렸듯이 "긴 머리에다 꿈을 꾸듯 몽롱하고 커다란 눈을 가진 인어"(114)처럼 돌아다닌다.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왜 그녀가 크리스티안을 사랑의 파트너로 삼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그녀 자신도 대답할 수 없으리라. 단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분위기가 있었고, 어떤 접촉이 있었으며, 그 접촉이 예상치 않았던 감정을 일으켰고, 그들은 그 감정을 좇았다는 것, 그것이 전부이리라. 하긴 사랑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설명할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 사랑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슈텔라가 뜻밖의 사고로 죽은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조만간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사회에 의해 발각되었을 것이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보다 세인의 시선에 대해 더 집중해야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사랑은 아름다움만을 간직한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크리스티안의 시점에서 서술되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성장과 사랑과 고통, 열정과 죽음, 그 후의 오랜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영원히 지속시키고 싶었던 벅찬 행복의 경험 -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는 데 그쳤을 그 경험을 크리스티안은 실제로 할 수 있었고, 그의 이야기는 아마도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꿈으로서만도 아름다운 이 성장기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누구는 사랑을 위한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겠고, 누구는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꿈의 기억을 들추어볼 수도 있겠다. 그런 일들이 쌓여 우리가 좀 더 사랑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면 세상도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만 가득한 이 세상이 아무래도 좀 흉하고 피곤하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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