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혹시 이런 질문들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가?

-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욕망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 만일 '이기적 유전자'가 우리를 지배한다면 이타적 행동은 왜 사라지지 않았는가?
- 남성이 성적 매력을 느끼는 여성의 육체는 역사적, 지역적으로 늘 달랐는가? 아니면 어떤 보편적인 성질이 있는가?
- 우리는 왜 낯선 것에 대해 일단 거부반응부터 일으키고 보는가?
- 여자들은 대체로 운전을 할 때 왜 자주 길을 못 찾는가?
- 도대체 인간이 웃음을 발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 임산부는 왜 입덧을 하는가?
- 음식에 향신료를 넣으면 왜 맛이 좋을까?
- 우리가 어떤 자연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 인간은 왜 수다떨기를 좋아하는가?
- 과연 인간에게는 발정기가 사라졌는가?
- 유인원에서 생겨난 인간은 왜 털을 벗어버렸는가?
- 나무는 왜 단풍이라는 변화를 구사하는가?
- 도덕이 본능일 수 있는가?
- 음악은 왜 생겨났을까?
- 종교는 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났는가?
- 짝짓기의 목적이 자식을 만드는 것이라면 동성애는 왜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전혀 흥미롭지 않다면, 당신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질문들이 아주 흥미롭고, 해답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재미와 인식이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표현은 흔하지만 좀처럼 체험하기는 힘든 경험을 오랜만에 하게 될 것이므로.

진화심리학은 위의 것들 외에도 자연 현상과 인간 행동의 온갖 면들을 파헤치면서 설명을 찾는다. 이 때 진화심리학이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것들을 이 책과 다른 책들을 종합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 계통이 침팬지 계통에서 갈라져 나온 사건은 약 600만년 전에 일어났다. 이 오랜 기간 동안 인간 계통은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살았다.
2. 이런 인간 계통이 아프리가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약 10만년 전의 일이다. 10만년이라면 기껏해야 5000세대에 지나지 않으며, 이 시간은 진화상의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다.
3. 그러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은 그 이전, 그러니까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기에 만들어진 그대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4. 따라서 현대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현대인의 모든 행동들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던 우리의 조상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5. 자, 현대인의 성질이 궁금한가? 그것을 알고 싶다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진행된 수백만년 전의 세계로 가라!

인간에 대해 아주 고상하고 숭고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혐오감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결국 본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인간이라면,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지만 본능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능은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합리적이며 수백만년의 검증을 거쳐 형성된 믿을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본능을 대립시키는 것도 결국 인간의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은 본능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산물은 인간과 동물의 세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지만, 그 차이에 현혹되어 본능을 우습게 보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본능이 없다면 당신은 단 하루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당신을 거의 자동적으로 안전하게 지켜주고 유지해주는 본능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과도한 도덕론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사회 속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도 도움을 준다.

진화심리학은 이미 심리학의 전통적 영역에서 벗어나 인간의 모든 문화적 현상들, 예컨대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같은 책은 진화심리학이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물론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인물들을 움직이는 본능을 밝혀내고, 이로부터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법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의 해석 자체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작업이다.) 현재로서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소위 '자연주의의 오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많은 것'일 뿐, '전부'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자연주의의 오류'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에서는 17, 18장에서 도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도덕에서도 추론보다 직관이 앞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이런 관찰이 신선한 것도 사실이지만, "도덕은 본능이다"(192쪽)라는 저자의 결론에는  경솔한 면이 있다. 진화심리학의 전제가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유지, 번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라면, 이런 전제와는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상들도 인간 사회에는 많다. 희생적 행위도 자주 관찰되며 직관적 판단을 넘어선 도덕적 성찰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도덕에 관한 한, 저자는 자연주의의 오류에 빠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저자가 원래 한 잡지에 실었던 연재물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래서 몇 군데에서 내용이 중복되는 점도 있고, 군데군데 논의가 전개되다가 만 듯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아주 발랄하고 가벼우면서도 피상성에 빠지지도, 핵심을 놓치지도 않는 미덕을 보여준다.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색다른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안 읽은 사람보다는 사람을 보는 눈이 한 수 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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