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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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고골이 1835년에 발표한 작품집 <<아라베스크>>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키 거리>, 이듬해에 발표된 <코>, 그리고 1842년에 발표된 <외투>를 담고 있다.  
고골의 문학사적 중요성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현실과 환상이 극히 독특하게 만나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현실'은 당대의 현실의 본질적인 부분, 문제적인 부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를 그로테스크하게 희화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환상'은 상상과 꿈, 초현실적 사건 등으로 구성되지만,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현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양자의 경계가 불확실하게 되어 작품에서 묘사되는 전체 현실에 불안감을 부여한다. 이런 불안 속에서 독자는 작품 속 현실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는 공포까지 느끼게 된다. 우스운 것과 공포스러운 것의 절묘한 결합, 여기에 고골의 독보적인 특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E.T.A 호프만의 <모래사나이> 등에서 이런 결합이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고골이 이런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성과 환상성 어느 한 쪽에도 소홀하지 않으면서 강력한 사회비판적 관점을 작품 속에 새겨넣은 데서는 그를 따를 작가가 드물다.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번역이 좋다. 물론 더러 오역이나 오역까지는 아니라 해도 뜻을 분명히 살리지 못한 문장들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의 다른 번역본들과 비교할 때 좋은 번역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초상화>와 <네프스키 거리>의 번역은 마치 이 작품들이 처음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문장이 자연스럽다. 또한 역자의 해설도 상당한 연구와 사색의 흔적임이 드러난다. 작품에 대한 기본정보와 역자의 주관적인 감상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느 해설들과 달리 조주관의 해설은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의 포인트들을 충실하게 짚어주고 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번역본을 읽으며 즐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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