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서비스부
브누아 뒤퇴르트르 지음, 함정임 옮김 / 강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내 핸드폰은 제법 오래 된 편이다. 여러 해 동안 바꾸지 않고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내 것만큼 오래 된 모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나와 비슷한 기계를 꺼내들기도 하지만, 이런 일마저 날이 갈수록 드물어진다. 하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내 핸드폰을 새 모델로 바꾸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통화도 잘 되고, 문자도 잘 된다. 물론 3자 버튼이 약간 고장이 나서 힘껏 꾹 눌러주지 않으면 입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약간만 주의하면 별 탈 없이 쓸 수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핸드폰을 재빨리 갈아치우는 것일까?

자동차의 경우도 비슷하다. 외국에 나가보면 10년 된 차는 흔해빠졌고, 15년, 심지어 20년 된 차들까지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도로는 반짝거리는 새 차들로 즐비하다. 한국차의 수명이 외국차에 비해 짧다는 것이 과연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의 전부일까?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하는 아이라면 모를까, 문서작업이나 인터넷 정도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7, 8년 된 컴퓨터라도 얼마든지 큰 불편 없이 쓸 수 있다. 그래도 대부분 컴퓨터의 사용기간을 기껏해야 5년쯤으로 잡는 것 같다.

사람들은 돈이 남아도는 것일까. 바꿀 필요도 없는 100만 원짜리 컴퓨터를 90만원에, 바꿀 필요도 없는 40만 원짜리 핸드폰을 15만원에 사면, 바꿀 필요도 없는 1000만 원짜리 새차를 950만원에 사면 이익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로 필요해서 물건을 바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새 상품의 이점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광고의 역할도 톡톡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광고는 상품의 실제적 효용을 전달하기보다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김태희폰’, ‘이효리폰’이 거의 상품명이다. 우리는 너무 순진한 소비자들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선거에서도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내 생각은, 상당히 그렇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순진하다. 이런 순진함으로 인해 그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사고, 그 때문에 쪼들린다. 선거에서 뽑아주어서는 안 될 사람을 뽑아주고 뒤늦게 한탄한다. 알뜰한 소비자, 똑똑한 투표자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나 많다.

이 책은 핸드폰을 산 지 일주일 만에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로 말하자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몇 년 째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지만,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당연히 그 남자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이 남자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덕택에 무수한 자동응답 시스템의 음성들을 들어야 하고, 바가지 전화요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연결된 안내원도 회사의 매뉴얼에 따라 앵무새같은 대답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말단 직원은 일종의 쓰레기 청소부와 같다. 불만에 가득 찬 고객의 항의를 최하 말단의 자리에서 들어주고 기업이 시킨 대로 대답하는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일이 연거푸 일어난다. 현금인출기 앞에서는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돈을 인출하지 못한다. 은행과의 싸움도 역시 사람이 아니라 기계와의 싸움이다. 비행기를 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바꾸려고 하면서 다시 자동응답 시스템과 오랫동안 씨름을 한다. 컴퓨터가 난데없이 비밀번호들을 요구하고, 시스템이 다운되어 버린다. 신청하지도 않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요금청구서가 날아든다. 결국 이 남자는 전화통을 버리고 항공사로, 통신사로 직접 찾아간다. 그러나 이런 손님을 맞는 것은 천신만고 끝에 연결된 전화상담원과 다를 바 없는 직원들이다. 광고에 현혹되어 덜컥 계약을 했다가 문제가 생겨 결국 회사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긴 줄을 서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서비스센터를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모든 회사들이 다 이럴 것이므로 대안이 없다. 대안이 없는 고객들은 절대적인 약자들이며, 기업의 볼모들이자 노예들이다. 결국 소수의 기업임원들의 터무니없는 수입을 매달 차곡차곡 채워주는 어중이떠중이들에 불과하다.

일종의 디스토피아다. 모든 것이 기업의 매뉴얼에 따라 지배되는 세상, 모든 세상사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처리되는 세상, 개인과 개인의 대화가 체계적으로 단절되고 지연되는 세상, 추상적인 기계언어가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대체해버리는 세상, 소수의 기업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을 독점하는 세상, 삶의 거의 모든 영역들이 ‘민영화’되는 세상, 국가도 또 하나의 기업으로 변해버리는 세상, 이 모든 변화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엄청난 힘의 불균형이 생기는 세상 - 한마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끝이 어디인지를 이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의 내용은 아주 쉽고 일상적이며 상식적이다. 문체 또한 그렇다. 그러니 책을 다 읽는 데 겨우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남는 인상은 꽤나 진하다.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대부분의 현실들이 이미 우리의 현실들이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살 때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지만, 해약하려면 참으로 복잡하고 수고스럽다. 녹음된 음성을 들으며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기계에 서너 번만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다가는 된 통 서리를 맞는다. 비밀번호를 다 똑같이 해놓으면 위험이 크다고 하는데, 그 많은 다른 비밀번호들을 어떻게 외운단 말인가. 이것이 도대체 ‘합리화’인가? 고용인원을 줄이면 주가가 올라간다.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순간, 누군가 떼돈을 번다. 합병 이야기만 나오면 또 주가가 올라간다. 소수 기업이 더욱 막강해지는 순간, 나의 힘은 줄어든다. 그것이 세계화, 선진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뻔뻔한 거짓말을 참아야 하는가?

제기된 문제의 의미심장함에 비해 소설의 결말은 좀 허무하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아름다운 여직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남자의 불만은 방향을 잃고 만다.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을 좀 대접해달라는 것뿐이었던가? 이렇게 끝나야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런 정신 나간 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짜 논리들이 가짜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강력하게,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이 해결책까지 제시해줄 필요는 없다. 이 남자의 맥없는 결말 자체가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결말은 좀 허무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은 우리 ‘소비자’들이 어떤 계략에 말려들어 있는지 한 번 제대로 따져보게 한다는 점에서 읽을 만하다. 독서를 위한 몇 시간의 투자로서는 소득이 톡톡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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